스토리/Rok marines

역사속의 오늘 * 1775년 11월 10일 - 미국 해병대 창설

marineset 2023. 5. 26. 06:55
1775년 11월 10일 - 미국 해병대 창설
역사속의 오늘 | 2007/11/10 13:10 capa1954



1775년 11월 10일, 미국 해병대 창설

Marines Hymn
THE MARINES HYMN (Hall of Montezuma)


From the Halls of Montezuma
To the Shores of Tripoli.
We fight our country's battles
In the air on land and sea.
First to fight for right and freedom,
And to keep our honor clean.
We are proud to bear the title
of United States Marines.


Our flag's unfurled to every breeze
From dawn to setting sun.
We have fought in every clime and place
Where we could take a gun.
In the snow of far off Northern lands
And in sunny tropic scenes.
You will find us always on the job
The United States Marines.


Here's health to you and to our Corps
Which we are proud to serve.
In many a strife we've fought for life
And never lost our nerve.
In the Army and the Navy
Ever look on Heaven's scenes,
They will find the street are guarded
By United States Marines.


몬테주마의 궁전에서 트리폴리의 해변까지,
우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네.
첫째로 정의와 자유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우네.
우리는 미합중국의 해병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네.


새벽부터 황혼까지 우리의 깃발은 펄럭인다네.
우리는 총을 잡을 수 있기만 하면 어디서라도 싸워왔네.
북방의 설원에서도, 눈부신 햇살 비추는 열대의 풍경에서도
언제나 근무중인
우리 미합중국 해병대를 볼 수 있다네.


당신과 우리가 자랑스럽게 복무하는 우리 부대여 영원하라.
수없이 한결 같이 우리는 목숨을 내걸고 싸웠고
결코 용기를 잃은 적이 없다네.
육군과 해군이 (죽어서) 천국의 풍경을 볼 때에도
그들은 그곳의 거리를 지키는
미합중국 해병대를 보게 되리.


1775년 11월 10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 대륙 의회가 2개 대대 병력의 ‘대륙해병대’(Continental Marines) 창설을 결의, 미국 해병대가 탄생합니다. 그 해 4월 19일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가 충돌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직후의 일이었죠. 최초의 해병대원들은 술집 ‘탠 터번’에서 모병되었으며, 초대 해병대 사령관 ‘사무엘 니콜라스’ 소령도 정규 군인이 아닌 술집 주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미 해병대 최초의 병력은 술집에서 모집되었습니다.

대부분이 상인이나 직공 출신들이었던 초창기 해병대의 주 임무는 상륙작전이 아니라, 함선의 호위와 함상 백병전이었습니다. 미국 해병대원들의 별칭인 ‘레더 넥’(leather-neck, 가죽 목)이 여기에서 유래했는데요, 적과 붙들고 뒹굴며 백병전을 벌일 때 목을 물어뜯기는 일이 다반사여서 목의 경동맥이나 울대를 보호하기 위해 가죽 띠를 목에 두르고 다닌대서 붙여졌던 별명이지요. 8년간의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실전 경험을 쌓은 미 해병대는 2천명으로 늘어나 있었지만, 1783년 파리협약으로 독립을 승인 받은 미국이 해군 전함들을 매각하면서 해체됩니다. 하지만 15년 뒤인 1798년 7월, 주변국가와의 분쟁에 동원할 일종의 긴급파견 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한 아담스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 해병대는 재창설 됩니다.

이때부터 미 해병대는 미국의 해외 진출에 첨병으로 활동합니다. 미 해병대 찬가의 1절 ‘몬테주마의 궁전에서 트리폴리의 해안까지’라는 가사에 등장하는 몬테주마는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 당시의 멕시코 요새중의 하나로, 미 해병대가 점령하면서 그들의 깃발을 게양한 곳이죠. 트리폴리의 해안이라는 구절은 1801년 해적소탕을 명분으로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 해병대를 파견해서 전투를 벌인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고수해 오던 일본의 개항을 위해 페리 제독이 동원한 것도 200명의 미 해병대원들이었고, 중국 의화단의 반외세 봉기 때 55일간 포위된 북경에서 미국 공관을 지킨 것도 미국 해병대였습니다.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 침입해서 조선군을 전멸 시켰던 역사도 가지고 있지요.

                                                           1차대전 당시 함상에 정렬한 미 해병대원들.

1차 대전때는 유럽전선에서 육군의 일부로 참호전을 치루었던 미 해병대에게 상륙작전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은 1930년대 무렵입니다. 일본과의 전쟁이 현실화 되면서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일본의 위임 통치령과 일본 본토에 상륙할 필요성이 대두 되었고, 미 해병대는 피와 죽음으로 얼룩질 임무를 떠맡게 됩니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 본토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미 해병대는 1942년 과달카날 상륙작전 때부터 대일전의 선봉에서 활약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미 해병대의 규모는 총 7개 사단 48만 명에 달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미 해병대의 규모는 대폭 축소되고(2개 사단, 7만 5천명), 한 때 ‘해병대 무용론’까지 대두되어 부대의 존폐문제까지 걱정해야 했지만, 한국전쟁은 미 해병대에게 소생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과 장진호전투 등에서 선전한 해병대는 다시 한번 미국의 최정예 부대로서의 명성을 되찾게 되죠.


현재 미 해병대는 ‘신속대응군’ 혹은 ‘긴급전개 부대’로 육군의 공수부대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에 미국이 가장 먼저 파견하는 부대입니다. 그래서 미국 해병대의 움직임이 뉴욕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대서 ‘월스트리트 경찰대’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오늘날 ‘레더 넥’(미 해병대)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 과거 대영 제국의 ‘레드 코트’(영국 육군의 별칭)가 주둔하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어떤 문명 비평가의 지적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오늘입니다.              
 

The_United_States_Marine_Corps-converted.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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