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병신년의 역사
marineset
2023. 5. 2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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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丙申年
을미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병신년 한 해가 각일각 닥아 오고 있다.
묵은 한 해가 저물고 새해로 바뀌는 건 해마다 되풀이 되지만 干支(간지)에 의한 해는 一周甲(일주갑), 그러니까 60년마다 바뀌는 게 하늘의 섭리이다.
내년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丙申年(병신년)의 丙(병)은 세 번째 天干(천간)으로, 방위로는 南南南東(남남남동)이라 남에 해당하고, 五行(오행)으로는 火(화)에, 색깔로는 붉은색에 해당한다. 병신년의 申(신)은 아홉 번째의 地支(지지)로, 띠와 때를 나타내는데 띠는 원숭이에, 때는 申時(신시 :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병신년을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하는 것이다.
원숭이는 다재다능하고 임기응변을 잘하지만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 해인 병신년엔 우리 사람도 다재다능하고 임기응변의 장점은 살리되, 부족한 인내와 끈기는 북돋아야 하겠다.
60년마다 반복되는 병신년은 역사상 어떤 史實(사실)과 事實(사실)을 남기고 있을까? 이홍직의 『國史大事典(국사대사전)』의 「年表(연표)」를 통해 역사 속의 병신년을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고구려 광개토대왕 6년, 곧 永樂(영락) 6년(단기 2729년. 서기 396년)의 병신년이다. 이해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쳐서 58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도성인 漢城(한성)까지 육박, 왕의 동생 등 대신 10여명을 볼모로 삼은 끝에 백제의 항복을 받아 낸다.
만주 벌판을 정복, 고구려 최대 영토를 넓혀 諡號(시호)도 廣開土大王(광개토대왕)이다. 그는 3년 뒤에는 신라를 침공한 倭兵(왜병)을 낙동강 유역까지 내려와 물리침으로써 신라의 왕위계승에까지 간여할 정도로 征服君主(정복군주)로서의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 맞서 삼국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年號(연호)인 永樂(영락)을 쓰기도 했다.
고려 태조 19년(단기 3269년, 서기936년) 병신년, 고려군은 후백제의 神劍軍(신검군)을 대파하고 後三國(후삼국)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다. 아들에게 쫓겨난 견훤이 이 전쟁에서 왕건의 고려군 향도 역할을 해 자기가 세운 후백제를 망하게 하는데 앞장선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고려 高宗(고종) 23년(단기 3569년, 서기 1236년) 병신년에는 6월에 압록강을 건넌 몽고군이 8월에는 南京(남경 : 지금의 서울)을 지나 평택, 아산을 거쳐 10월에는 전주까지 쳐 내려온다. 對蒙抗爭(대몽항쟁)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30여 년간 계속된 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외침을 당한 전쟁 가운데 가장 장기간의 전쟁임은 물론이다. 조선조의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해 7년간, 병자호란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6.25 전쟁은 3년간에 불과하다. 몽고병의 3차 침입전쟁은 고종 23년부터 4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이로 말미암아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고 만다.
고려 고종 23년의 병신년은 저들이 초토화 전술을 쓴 3차 침입기간으로 4년간 지속된다. 이렇게 국운이 풍전등화 같은 전쟁와중에도 8만대장경을 새기기 시작, 16년 만에 완성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호국불교, 문화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쾌거라 할만하다.
몽고에 패해 100 여년 가까이 몽고 - 뒤에는 원나라 - 의 지배를 받아 오면서 임금의 諡號(시호)앞에 몽고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忠(충)자를 붙여오던 고려가 31대 공민왕 때는 元(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자주정책을 펼친다. 공민왕 5년(단기 3689년, 서기 1356년) 병신년에는 일본 원정을 위한 전방사령부 격인 征東行省(정동행성)을 폐지하고 함경도 함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식민정부인 雙城摠管府(쌍성총관부)마저 수복한다.
그뿐 아니라 이해 6월에는 원나라의 연호도 사용을 금지하는 등 자주깃발을 높이 든다. 하지만 공민왕 14년 왕비인 魯國公主(노국공주)의 사망을 계기로 공민왕이 혼미에 빠져 그의 개혁정치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만다.
아오지 탄광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로 더 유명한 阿吾地(아오지)는 조선조 성종 7년(단기 3809년, 서기 1476년) 병신년에 萬戶(만호)를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 행정구역에 편입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만주, 러시아 등 3국의 국경지역에 인접한 지역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북도 경흥군 북부의 한 작은 읍에 지나지 않는다. 奧地(오지)중의 오지이지만 탄광촌으로서, 공업지대 일뿐 아니라 한.중.러 3국의 접경지역이라 안보상 중요한 거점도시이기도 하다.
조선 중종 31년(단기 3869년, 서기 1536년) 병신년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해 4월에는 종소리 - 人定(인정)과 罷漏(파루) 때 치는 종소리 인 듯 - 가 들리지 않는다고 廢寺 (폐사)가 된 貞陵寺(정릉사)의 종을 崇禮門(숭례문 : 일명 남대문)에, 圓覺寺(원각사)의 종을 興仁門(흥인문 : 동대문)에 옮겼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조선 영조 52년, 정조 1년(단기4109년, 서기 1776년) 병신년은 조선조 임금 중 최장기인 52년간 집권한 영조가 83세로 昇遐(승하)한 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의 시대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이 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이란 나라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미국은 200년 넘게 존속해 오면서 세계 1등 국이 되었지만 같은 해 취임한 정조는 24년 동안만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구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못난 후손 왕들 때문에 조선은 그 후 백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정조는 그래도 즉위 첫해에 국왕 직속의 학술 및 정책연구기관이이며 왕실도서관, 싱크탱크(Think Tank)인 奎章閣(규장각)을 설립, 개혁정치를 펴 나간다.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서자 출신은 물론 정약용 등 진보적 학자를 규장각에 발탁,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열어 갔던 것이다.
그의 아들인 헌종과 왕족으로 왕위에 오른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면서 內治(내치)가 혼란에 빠지고 외세에 휘둘리다가 순종 때는 결국 조선 왕조 5백년은 종언을 고하고 만다.
조선 헌종 2년(단기 4169년, 서기 1836년) 병신년에는 역사적 큰 사건은 별로 없다. 그해 2월에는 정약용이, 3월에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사망한다. 4월에는 秋史(추사) 김정희가 大司成(대사성)에 오른다.
이해 7월에는 전라도 陵州(능주 : 지금의 전남 화순지역) 일대에 수해가 발생, 민가 3백여 채가 물에 잠기고, 9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보이는가 하면 11월에는 특이 하게도 祈雪祭(기설제)를 지냈다는 내용도 나온다.
120년 전인 고종 33년이자 建陽(건양) 원년(단기 4229년, 서기 1896년)의 병신년은 國號(국호)를 조선으로 사용한 마지막 해이다. 다음해에 국호가 大韓帝國(대한제국)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天子國(천자국), 즉 중국이 아니면 諸侯國(제후국)은 年號(연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불문율 - 중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긴 해도 - 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 5천년 동안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진흥왕 등 일부 왕이 일시적으로 연호를 사용해 왔을 뿐이다. 수 천년 동안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 해 처음으로 건양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역사적인 한 해를 맞이했던 것이다. 지금도 ‘建陽多慶(건양다경)’이라는 立春榜(입춘방)은 이 때의 연호에 연유한 것이다.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고 청.일.러 등 외세에 시달리던 끝에 전 해의 閔妃弑害事件(민비시해사건)으로 불안해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俄館播遷(아관파천)을 단행하고 친러내각을 구성한다. 이 와중에 친일내각의 총리대신 김홍집을 비롯해 정병하, 어윤중 등이 성난 민중에게 피살되기도 한다.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머물고, 친러내각이 구성되자 친러세력이 판을 치게 되고 각종 이권은 러시아의 손아귀로 넘어간다.
함경북도의 경원, 경성의 광산 채굴권, 압록강 유역 및 울릉도 삼림채벌권이 러시아인에게 넘어가고 만다.
그뿐 아니라 露語學校(노어학교)가 개설되고, 러시아 사관을 초빙해 조선의 군대를 러시아식으로 훈련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百尺竿頭(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지키고자 서재필 등이 독립협회를 조직해 활동에 들어가고 중국사절을 맞이하던 迎恩門(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이 해에 세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60년 전의 檀紀(단기) 4289년(서기 1956년) 의 병신년 - 이 때 대한민국의 공식 연호는 법에 의해 단기 였다 - 에는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이긴 했지만 많은 민주주의 행사가 거행된 한 해이기도 하다.
5월 5일에는 정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신익희가 유세도중 전라북도 이리에서 急逝(급서)한다. 5월 15일에는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대통령에 여당인 자유당 이승만, 부통령에 야당인 민주당 장면이 선출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6월에는 입법부의 수장도 뽑아 국회의장에 자유당의 이기붕, 부의장에 역시 자유당의 조경규, 황성수가 당선된다. 지금은 국회 부의장 한 석은 야당에게 할애하지만 자유당 정권하에서는 여당이 독식을 한 모양이다. 이렇게 일당독재를 하다가 4년 후에는 4.19 의거로 정권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9월엔 야당인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려 조병옥이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된다. 하지만 그도 4년 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선거 한 달 전에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만다. 연이은 야당 대통령 후보의 사망으로 국민들은 패닉상태에 빠졌음은 물론이다.
이 해엔 정치적 사건만 있은 건 아니다. 1월엔 태백산맥을 가로 질러 경북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榮岩線(영암선)이 개통된다. 같은 1월에는 새싹회(대표, 윤석중)가 小波(소파) 方定煥(방정환)을 기려 마련한 상인 小波賞(소파상)이 처음 제정된다. 5월엔 TV방송국이 최초로 발족되기도 한다.
이상 역사 속의 병신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백제 침공,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 고려 고종 때의 대몽항쟁, 조선 고종 때의 아관파천 등은 국운을 좌우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병신년엔 후백제의 왕인 견훤과 조선의 영조대왕을 잃고, 정약용, 신익희도 이 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더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이라는 불후의 문화재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해라는 데서 좀은 위로를 받는다.
경제가 어렵다고 民草(민초)들이 아우성이다. 새해 병신년에는 원숭이의 재주와 지혜를 빌려 이 험한 世波(세파)를 무사히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아무튼 병신년엔 병신 육갑하는 일일랑 하지 말아야 하겠다.
단기 4348년 12월 16일 대구에서 抱民 徐昌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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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156년 계립령(지금의 문경새재 동쪽 고개로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을 연결한다. 사람들에게는 하늘재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길을 개통했다. 2년 뒤에 달성한 죽령길 개통과 더불어 신라는 세력을 소백산맥 이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
•광개토대왕은 396년 병신년에 백제를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이를 병신 대원정(…)이라 한다.
•진지왕은 576년 병신년에 즉위했다. 그리고 그는 4년만에 퇴위당했다.
•선덕여왕은 636년 병신년에 앓아누웠다. 또한 이 때부터 백제의 침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고려는 936년 병신년에 후삼국 통일을 이뤘다.
•팔만대장경은 1236년 병신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596년 병신년에 임진왜란이 잠시 중단된 사이에 이몽학의 난이 발생했다. 의병장 김덕령은 여기에 연루되어 죽었다.
•조선 숙종 시대인 1716년에는 병신처분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병신을 처분한다는 뜻이 아니고, 숙종이 송시열과 윤증 간의 시비(회니시비)를 판단한 후 "윤증이 송시열을 깐 글이 많지만, 송시열이 윤증 아빠 윤선거를 위해 지은 묘문 중에는 윤선거를 깐 글 따위는 없는데?"라고 이 시비를 정리한 처분. 결과적으로 노론의 편을 든 셈이다.
•1776년은 병신년이다.
◦정조는 1776년 병신년에 즉위했다.
◦국부론은 1776년 병신년에 출간되었다.
◦미국은 1776년 병신년에 독립했다.
•1896년은 병신년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영국-잔지바르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40분 만에 끝난 전쟁으로,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전쟁이다. 병신같은 전쟁
•1956년 병신년에 대한민국 최초 TV방송국인 HLKZ-TV가 개국하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유로 2016이 실시되는 2016년. 이 해는 병신년이다.
역사속의 丙申年
을미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병신년 한 해가 각일각 닥아 오고 있다.
묵은 한 해가 저물고 새해로 바뀌는 건 해마다 되풀이 되지만 干支(간지)에 의한 해는 一周甲(일주갑), 그러니까 60년마다 바뀌는 게 하늘의 섭리이다.
내년 병신년은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丙申年(병신년)의 丙(병)은 세 번째 天干(천간)으로, 방위로는 南南南東(남남남동)이라 남에 해당하고, 五行(오행)으로는 火(화)에, 색깔로는 붉은색에 해당한다. 병신년의 申(신)은 아홉 번째의 地支(지지)로, 띠와 때를 나타내는데 띠는 원숭이에, 때는 申時(신시 :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병신년을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하는 것이다.
원숭이는 다재다능하고 임기응변을 잘하지만 인내심과 끈기가 부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 해인 병신년엔 우리 사람도 다재다능하고 임기응변의 장점은 살리되, 부족한 인내와 끈기는 북돋아야 하겠다.
60년마다 반복되는 병신년은 역사상 어떤 史實(사실)과 事實(사실)을 남기고 있을까? 이홍직의 『國史大事典(국사대사전)』의 「年表(연표)」를 통해 역사 속의 병신년을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고구려 광개토대왕 6년, 곧 永樂(영락) 6년(단기 2729년. 서기 396년)의 병신년이다. 이해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쳐서 58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도성인 漢城(한성)까지 육박, 왕의 동생 등 대신 10여명을 볼모로 삼은 끝에 백제의 항복을 받아 낸다.
만주 벌판을 정복, 고구려 최대 영토를 넓혀 諡號(시호)도 廣開土大王(광개토대왕)이다. 그는 3년 뒤에는 신라를 침공한 倭兵(왜병)을 낙동강 유역까지 내려와 물리침으로써 신라의 왕위계승에까지 간여할 정도로 征服君主(정복군주)로서의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에 맞서 삼국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年號(연호)인 永樂(영락)을 쓰기도 했다.
고려 태조 19년(단기 3269년, 서기936년) 병신년, 고려군은 후백제의 神劍軍(신검군)을 대파하고 後三國(후삼국)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다. 아들에게 쫓겨난 견훤이 이 전쟁에서 왕건의 고려군 향도 역할을 해 자기가 세운 후백제를 망하게 하는데 앞장선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고려 高宗(고종) 23년(단기 3569년, 서기 1236년) 병신년에는 6월에 압록강을 건넌 몽고군이 8월에는 南京(남경 : 지금의 서울)을 지나 평택, 아산을 거쳐 10월에는 전주까지 쳐 내려온다. 對蒙抗爭(대몽항쟁)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30여 년간 계속된 전쟁이다. 우리나라가 외침을 당한 전쟁 가운데 가장 장기간의 전쟁임은 물론이다. 조선조의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해 7년간, 병자호란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6.25 전쟁은 3년간에 불과하다. 몽고병의 3차 침입전쟁은 고종 23년부터 4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이로 말미암아 경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고 만다.
고려 고종 23년의 병신년은 저들이 초토화 전술을 쓴 3차 침입기간으로 4년간 지속된다. 이렇게 국운이 풍전등화 같은 전쟁와중에도 8만대장경을 새기기 시작, 16년 만에 완성한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호국불교, 문화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쾌거라 할만하다.
몽고에 패해 100 여년 가까이 몽고 - 뒤에는 원나라 - 의 지배를 받아 오면서 임금의 諡號(시호)앞에 몽고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忠(충)자를 붙여오던 고려가 31대 공민왕 때는 元(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자주정책을 펼친다. 공민왕 5년(단기 3689년, 서기 1356년) 병신년에는 일본 원정을 위한 전방사령부 격인 征東行省(정동행성)을 폐지하고 함경도 함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식민정부인 雙城摠管府(쌍성총관부)마저 수복한다.
그뿐 아니라 이해 6월에는 원나라의 연호도 사용을 금지하는 등 자주깃발을 높이 든다. 하지만 공민왕 14년 왕비인 魯國公主(노국공주)의 사망을 계기로 공민왕이 혼미에 빠져 그의 개혁정치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만다.
아오지 탄광과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로 더 유명한 阿吾地(아오지)는 조선조 성종 7년(단기 3809년, 서기 1476년) 병신년에 萬戶(만호)를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 행정구역에 편입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만주, 러시아 등 3국의 국경지역에 인접한 지역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함경북도 경흥군 북부의 한 작은 읍에 지나지 않는다. 奧地(오지)중의 오지이지만 탄광촌으로서, 공업지대 일뿐 아니라 한.중.러 3국의 접경지역이라 안보상 중요한 거점도시이기도 하다.
조선 중종 31년(단기 3869년, 서기 1536년) 병신년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해 4월에는 종소리 - 人定(인정)과 罷漏(파루) 때 치는 종소리 인 듯 - 가 들리지 않는다고 廢寺 (폐사)가 된 貞陵寺(정릉사)의 종을 崇禮門(숭례문 : 일명 남대문)에, 圓覺寺(원각사)의 종을 興仁門(흥인문 : 동대문)에 옮겼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조선 영조 52년, 정조 1년(단기4109년, 서기 1776년) 병신년은 조선조 임금 중 최장기인 52년간 집권한 영조가 83세로 昇遐(승하)한 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의 시대가 열린 해이기도 하다.
이 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이란 나라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미국은 200년 넘게 존속해 오면서 세계 1등 국이 되었지만 같은 해 취임한 정조는 24년 동안만 조선의 르네상스기를 구가했을 뿐이다. 그러나 못난 후손 왕들 때문에 조선은 그 후 백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정조는 그래도 즉위 첫해에 국왕 직속의 학술 및 정책연구기관이이며 왕실도서관, 싱크탱크(Think Tank)인 奎章閣(규장각)을 설립, 개혁정치를 펴 나간다.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서자 출신은 물론 정약용 등 진보적 학자를 규장각에 발탁,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열어 갔던 것이다.
그의 아들인 헌종과 왕족으로 왕위에 오른 철종, 고종으로 이어지면서 內治(내치)가 혼란에 빠지고 외세에 휘둘리다가 순종 때는 결국 조선 왕조 5백년은 종언을 고하고 만다.
조선 헌종 2년(단기 4169년, 서기 1836년) 병신년에는 역사적 큰 사건은 별로 없다. 그해 2월에는 정약용이, 3월에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이 사망한다. 4월에는 秋史(추사) 김정희가 大司成(대사성)에 오른다.
이해 7월에는 전라도 陵州(능주 : 지금의 전남 화순지역) 일대에 수해가 발생, 민가 3백여 채가 물에 잠기고, 9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보이는가 하면 11월에는 특이 하게도 祈雪祭(기설제)를 지냈다는 내용도 나온다.
120년 전인 고종 33년이자 建陽(건양) 원년(단기 4229년, 서기 1896년)의 병신년은 國號(국호)를 조선으로 사용한 마지막 해이다. 다음해에 국호가 大韓帝國(대한제국)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天子國(천자국), 즉 중국이 아니면 諸侯國(제후국)은 年號(연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불문율 - 중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긴 해도 - 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 5천년 동안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진흥왕 등 일부 왕이 일시적으로 연호를 사용해 왔을 뿐이다. 수 천년 동안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다가 이 해 처음으로 건양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역사적인 한 해를 맞이했던 것이다. 지금도 ‘建陽多慶(건양다경)’이라는 立春榜(입춘방)은 이 때의 연호에 연유한 것이다.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고 청.일.러 등 외세에 시달리던 끝에 전 해의 閔妃弑害事件(민비시해사건)으로 불안해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俄館播遷(아관파천)을 단행하고 친러내각을 구성한다. 이 와중에 친일내각의 총리대신 김홍집을 비롯해 정병하, 어윤중 등이 성난 민중에게 피살되기도 한다.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머물고, 친러내각이 구성되자 친러세력이 판을 치게 되고 각종 이권은 러시아의 손아귀로 넘어간다.
함경북도의 경원, 경성의 광산 채굴권, 압록강 유역 및 울릉도 삼림채벌권이 러시아인에게 넘어가고 만다.
그뿐 아니라 露語學校(노어학교)가 개설되고, 러시아 사관을 초빙해 조선의 군대를 러시아식으로 훈련시키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百尺竿頭(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지키고자 서재필 등이 독립협회를 조직해 활동에 들어가고 중국사절을 맞이하던 迎恩門(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이 해에 세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60년 전의 檀紀(단기) 4289년(서기 1956년) 의 병신년 - 이 때 대한민국의 공식 연호는 법에 의해 단기 였다 - 에는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이긴 했지만 많은 민주주의 행사가 거행된 한 해이기도 하다.
5월 5일에는 정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신익희가 유세도중 전라북도 이리에서 急逝(급서)한다. 5월 15일에는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대통령에 여당인 자유당 이승만, 부통령에 야당인 민주당 장면이 선출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6월에는 입법부의 수장도 뽑아 국회의장에 자유당의 이기붕, 부의장에 역시 자유당의 조경규, 황성수가 당선된다. 지금은 국회 부의장 한 석은 야당에게 할애하지만 자유당 정권하에서는 여당이 독식을 한 모양이다. 이렇게 일당독재를 하다가 4년 후에는 4.19 의거로 정권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9월엔 야당인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려 조병옥이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된다. 하지만 그도 4년 뒤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선거 한 달 전에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만다. 연이은 야당 대통령 후보의 사망으로 국민들은 패닉상태에 빠졌음은 물론이다.
이 해엔 정치적 사건만 있은 건 아니다. 1월엔 태백산맥을 가로 질러 경북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榮岩線(영암선)이 개통된다. 같은 1월에는 새싹회(대표, 윤석중)가 小波(소파) 方定煥(방정환)을 기려 마련한 상인 小波賞(소파상)이 처음 제정된다. 5월엔 TV방송국이 최초로 발족되기도 한다.
이상 역사 속의 병신년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백제 침공,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 고려 고종 때의 대몽항쟁, 조선 고종 때의 아관파천 등은 국운을 좌우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병신년엔 후백제의 왕인 견훤과 조선의 영조대왕을 잃고, 정약용, 신익희도 이 해에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더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이라는 불후의 문화재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해라는 데서 좀은 위로를 받는다.
경제가 어렵다고 民草(민초)들이 아우성이다. 새해 병신년에는 원숭이의 재주와 지혜를 빌려 이 험한 世波(세파)를 무사히 헤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아무튼 병신년엔 병신 육갑하는 일일랑 하지 말아야 하겠다.
단기 4348년 12월 16일 대구에서 抱民 徐昌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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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156년 계립령(지금의 문경새재 동쪽 고개로 충청북도 충주와 경상북도 문경을 연결한다. 사람들에게는 하늘재란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길을 개통했다. 2년 뒤에 달성한 죽령길 개통과 더불어 신라는 세력을 소백산맥 이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
•광개토대왕은 396년 병신년에 백제를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이를 병신 대원정(…)이라 한다.
•진지왕은 576년 병신년에 즉위했다. 그리고 그는 4년만에 퇴위당했다.
•선덕여왕은 636년 병신년에 앓아누웠다. 또한 이 때부터 백제의 침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고려는 936년 병신년에 후삼국 통일을 이뤘다.
•팔만대장경은 1236년 병신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596년 병신년에 임진왜란이 잠시 중단된 사이에 이몽학의 난이 발생했다. 의병장 김덕령은 여기에 연루되어 죽었다.
•조선 숙종 시대인 1716년에는 병신처분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병신을 처분한다는 뜻이 아니고, 숙종이 송시열과 윤증 간의 시비(회니시비)를 판단한 후 "윤증이 송시열을 깐 글이 많지만, 송시열이 윤증 아빠 윤선거를 위해 지은 묘문 중에는 윤선거를 깐 글 따위는 없는데?"라고 이 시비를 정리한 처분. 결과적으로 노론의 편을 든 셈이다.
•1776년은 병신년이다.
◦정조는 1776년 병신년에 즉위했다.
◦국부론은 1776년 병신년에 출간되었다.
◦미국은 1776년 병신년에 독립했다.
•1896년은 병신년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영국-잔지바르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40분 만에 끝난 전쟁으로,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전쟁이다. 병신같은 전쟁
•1956년 병신년에 대한민국 최초 TV방송국인 HLKZ-TV가 개국하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유로 2016이 실시되는 2016년. 이 해는 병신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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