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해군 어린이 음악대
marineset
2023. 5. 31. 04:11
해군본부 정훈감실은 1951년 4월 어린이 음악대를 창설해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유엔군 관련 행사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주어 참전국 군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해군 군종감 겸 정훈감 정달빈 대령은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온 유엔군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었다.
야전병원 환자들도 위문한다는 목적을 덧붙여 어린이 음악대 창설의 꿈을 이루었다. 노래를 잘하는 7~12세 어린이 30명으로 구성된 이 합창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동요 ‘우리의 소원’을 작곡한 안병원 씨가 이끌었다.
행사 때마다 강렬한 인상 인기
단원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 갔던 YMCA 소속 어린이가 주축이었다. ‘그리운 금강산’으로 유명한 소프라노 이규도 씨도 그 멤버였다. 그들이 유엔군 부대를 찾아가 그 나라 민요와 한국 민요·가곡 등을 부를 때마다, 유엔군 장병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형편없는 후진국으로 알았던 나라에 이런 문화가 있는 줄 몰랐다고 실토하는 장병도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맺어져 더 이상 유엔군 위문을 할 수 없게 되자, 정대령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미국 대도시 순회공연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면 군사원조와 경제원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아이디어는 크게 히트했다. 마침 손원일 제독이 국방부장관 자리에 있을 때였다. 손제독이 미국 대통령 특사였던 밴프리트 장군에게 협조를 부탁해 도미공연을 성사시켰다. 1954년 4월 1일의 일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으로 온 국토가 폐허로 변한 나라 코리아에서 어린이합창단이 왔다는 뉴스는 전 미국에 화제가 됐다. 이들이 방문하는 42개 도시마다 많은 시민이 몰려나와 뜨겁게 맞아 주었다. 어린이 특유의 맑고 청아한 음색과 아름다운 선율이 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이 공연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음반으로 제작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 합창단이 회의가 진행 중이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한 공연은 큰 화제가 됐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공연이 의사당 안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상원의원들은 잠시 회의 중단을 결의하고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다. “외국 합창단이 개회 중인 의사당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것은 아마도 미국 역사상 처음일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때 상원의장이었던 리처드 닉슨 의원은 공연이 끝난 뒤 이렇게 치하했다. 그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됐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사람이다.한국 어린이합창단은 백악관에서도 공연을 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복도에서 커튼을 헤치고 선 채로 공연을 감상한 사실이 널리 보도됐다.
약속받은 원조액 4000만 달러
합창단 인솔단장 정대령은 그 사실을 신문을 보고야 알았다. 그는 대통령이 서서 감상하게 한 잘못이 죄송하고 민망해 큰 죄를 진 양 기가 죽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밴프리트 장군도 몰랐다고 하면서 “마음 쓰지 마라”며 위로했다고 한다. 합창단의 인기는 하늘 같이 높아졌고, 한국에 준 원조 액수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각종 사회단체의 초청이 늘고, 언론기관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그렇게 4개월의 미국 대도시 순회공연이 끝났을 때, 약속받은 원조액은 무려 4000만 달러였다. 해군 전 장병이 다달이 월급에서 떼고 대통령이 도와준 것을 합쳐 백두산함과 PC함 3척을 사온 돈이 6만 달러였다는 것을 상기해 보라. 4000만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힘을 말해 주는 작은 ‘사건’이었다.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 정리=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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