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용산 철도병원

1967년 , 국립철도고등학교에 합격하고 최종 신체검사를 철도병원에서 받았다. 그 당시 철도병원은 용산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에 담쟁이가 둘러쌓여 참으로 고풍스러웠다.
군대 다녀 오자 마자 병이 생겼는데...연평도 해병부대 지하벙커 생활을 하면서 열약한 환경에서 개인 위생관리에 소홀했기에 전염된 것으로 판단 되었다..
배뇨곤란과 혈뇨를 보여 한강성심병원 비뇨기과 양거영 교수께 신우신염과 방광염으로 진료를 받았지만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였고....서울동차사무소에 재직중 철도종사원에게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 받을 수 있는 철도병원에 3일간 입원하여 상급병원에서 밝혀내지 못한 최종진단을 받았으니, 바로 '방광결핵'이란다.
1년간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완치되었는데 철도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더 많이 고생했을지 모른다...斷想 by ba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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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용산철도병원은 1907년 조선통감부 철도국이 '용산동인병원'으로 처음 건립했다가 1918년 '용산철도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26년부터 철도국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임대되어 연구동과 연구실로 활용되다가 2007년 용산역세권 부지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은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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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등록문화재 ‘용산철도병원’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입력 : 2013.11.07 06:00:09
코레일, 2년 넘게 위탁업자 안 나타나 관리 않고 방치
문화재청 “우리가 관여 못해” 지정만 해놓고 무관심
6일 등록문화재 제428호인 서울 용산구 용산철도병원이 2011년 중앙대병원 철수 뒤 코레일과 문화재청의 관리 소홀로 2년째 방치되면서 도심 속 흉물로 변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6일 등록문화재 제428호인 서울 용산구 용산철도병원이 2011년 중앙대병원 철수 뒤 코레일과 문화재청의 관리 소홀로 2년째 방치되면서 도심 속 흉물로 변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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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옛 용산철도병원 본관. 붉은 벽돌과 절제된 곡선으로 192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서양 고전양식에서 근대 건축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에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 제428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2년 넘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도심 속 흉물로 버려져 있다. 소유주인 코레일은 물론 문화재 지정 주체인 문화재청 역시 가치를 잃어가는 이 건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 입구에는 폐목재·시멘트가루 등이 수북했고, 쓰레기가 담긴 검은색 봉투들이 즐비했다. 벽면은 녹이 슨 우수관이 흉하게 붙어 있다. 누군가 드나들었는지 창문 일부는 열려 있었고, 또 일부는 합판으로 막혀 있었다. 깨진 소주병과 낙서, 정리되지 않은 풀과 잔나무들….
주민들은 “밤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드나들기까지 해 무섭다”고 말했다. 관할 지구대는 이 건물을 순찰 대상지역에 포함시켰고, 인근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출입을 금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건물은 러일전쟁 전후 일본이 철도사업을 펼치면서 공사 중 부상당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이었다. 해방 후 철도국(현 코레일) 소유였다가 1981년 건물 뒤편으로 9층 규모의 현대식 병원 건물이 지어졌고, 1984년부터는 중앙대학교가 병원을 위탁 경영했다. 이후 2007년 10월 코레일은 ‘용산병원 부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중앙대병원에 임대차 계약 해지를 통지했다. 이후 양측 간 소송이 벌어졌고 2009년 12월 중앙대병원이 코레일에 토지와 건물을 반납하라는 판결이 났다. 중앙대병원은 2011년 3월 건물을 비웠다.
앞서 용산구민들은 “병원이 필요하다”며 개발계획에 반대했고, 2008년 3월 서울시는 이 땅을 ‘종합의료시설’ 부지로 지정했다. 병원 이외 다른 용도로의 개발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코레일은 그동안 이 건물을 임차할 민간업자를 여러 번 공모했으나 토지 용도 제한으로 사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코레일은 주변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경비업체를 고용한 상태다.
코레일 관계자는 “솔직히 문화재적 가치를 잘 모르겠다”며 “관리가 안되고 있는 등록문화재가 이 건물만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건물의 관리 책임은 소유주인 코레일에 있다”며 “우리가 관여해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김란기 대표는 “등록문화재 제도는 미래에 문화재적 가치가 더 높아질 것으로 판단하고 미리 관리하자는 취지”라며 “문화재를 오래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자 없이 방치되는 것보다 소유자의 재산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활용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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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311070600095#csidx4478a0c419796e9aca3774dacd13a1c
용산철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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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2월 1일 - 용산동인병원 개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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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9월 - 용산철도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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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4월 1일 - 용산철도의원으로 개칭,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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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 현존 병원건물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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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 경성철도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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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2월 - 경성교통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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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5월 1일 - 서울운수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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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6월 1일 - 서울교통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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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 1일 - 서울철도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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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1일 - 서울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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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7월 1일 - 철도청, 서울병원을 중앙문화학원에 위탁,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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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13일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용산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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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6일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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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5일 - 용산병원 진료 마감 및 현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이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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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1일 -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폐업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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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3일 - 리노베이션하여 용산역사박물관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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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신의 철길 따라⑩ ] 등록문화재 428호 용산철도병원 이야기
하비엔 편집국 / 기사승인 : 2020-09-14 16:32:26
▲1964년 철도간호학교 가관식 모습
[하비엔=하비엔 편집국] 용산철도병원은 본래 1902년 6월16일 일본에서 조직된 의사단체 동인회(同人會)가 1904년부터 조선 진출을 계획한 후 1907년12월 조선의 철도국과 협의하여 용산소재 철도관사를 개조하여 목조 2층의 동인병원을 개원하여 운영을 시작한 후 1913년 9월17일 철도국은 동인회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병원명칭을 용산철도병원으로 개칭하여 철도종사원과 그 가족을 주 대상으로 하는 외에 일반 환자도 수용하면서 시작된 철도인 전문병원이다.
1914년부터는 간호부양성소(1914.12.18.일 관보)를 운영하여 매년 16세 이상 30세 미만의 배우자 없는 고등소학교 이상 졸업한 여자 지망생 10~20명을 모집하여 간호원을 양성하였으며 당시 조선총독부병원 다음으로 의료시설이 완비된 병원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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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180209매일신보-철도병원화재 |
1918년 2월 9일자 매일신보에 의하면 용산철도병원이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1919년11월 같은자리에 건평 697㎡의 연화조 2층 건물로 전과 같은 규모로 복원하고 의료설비도 확충한 후 1922년 3월16일 또 한 번의 화재로 병실 2칸이 소실되었지만 이때도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1922.03.18.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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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시가도 |
1926년 4월 1일 철도병원을 철도국직영으로 변경하고(1926.04.06.일 매일신보) 6월24일자로 철도의(鐵道醫) 및 철도약제사를 주임관 또는 판임관대우를 한다는 관제를 공포하였으며(1926.06.26.일 관보), 1928년 3월 9일 대지 10,183.8㎡, 건평 1,255.21㎡의 지하1층 지상2층 건물 신축공사에 착공, 9월 준공하여 1929년 3월 설비공사를 완료함으로서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소아과, 치과, 부인과, 피부과 등 8개 진료과와 45병실에 82병상과 전염병실 11실 22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의학박사 7인을 포함 의사 및 조수 33인이 진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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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철도병원 |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료를 하였으며, 환자는 철도국직원 및 가족의 직무부상과 각종 질병환자를 제1종환자로, 철도승객 환자를 제2종 환자, 퇴직직원 및 가족환자를 제3종 환자, 일반 공중환자를 제4종환자로 구분하였다. 그러고 보니 1964년 필자가 서울역 근무 중 부상으로 철도병원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때 제1종 환자취급을 받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37년 6월에는 본관 후편에 3층 병실을 신축하고, 1938년 명칭을 경성철도병원으로 개칭하였으며, 1939년에는 본관을 증축 확장하였으며(1939.07.27.일 동아일보), 당시 통계에 따르면 경성철도병원의 진료 연인원은 32만 6,500명에 입원환자는 3만7,700여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철도병원은 새로운 의약품 실험에 앞장서 새로 개발한 적리병 내복 예방약을 최초로 시험 투약하였고, 1946년12월16일자 매일신보에 의하면 결핵예방을 위한 B.C.G접종을 한국 최초로 시행하였다고 하였으며, 1949년 4월23일자 경향신문은 의대병원에서 시가 수 억 원이나 되는 라디움 분실사건을 보도하면서 해방 전까지 전국에 15개밖에 없는 고가의 암치료 의약품인 라디움을 운수병원은 10개나 보관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청 운수부는 경성철도병원을 서울운수병원으로 개칭하고 간호부양성소를 운수고등간호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교통부는 서울교통병원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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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는 본관병동이름을 옛동이라 했고, 2008년 등록문화재 지정 |
1950년대 교통병원은 운영상 어려움으로 민영화를 검토하기도 했으며(1956.08.23.일 동아일보), 1963년 교통부에서 철도청이 분리되면서 서울철도병원으로 개칭한 후 1973년에는 본관을 전면 개수하고 명칭을 국립서울병원으로 개칭한 후 1981년에는 지하1층 지상9층의 병동을 신축하였다. 1984년 중앙대병원에서 임대하여 용산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 본관이 2008년10월27일 등록문화재 제428호로 등록되었으며, 계속 운영을 희망하는 중앙대와 반환요구 소송에서 2009년 한국철도공사의 승소로 2011년 3월25일 임대계약이 만료되었다.
중앙대병원 폐업이후 폐쇄되었던 철도병원은 한국철도공사의 개발계획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된 철도병원 본관은 용산구청과의 협의를 거쳐 용산역사박물관으로, 나머지 부분은 주거복합단지로 현대산업개발이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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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철도병원 본관 |
필자는 한국철도 역사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구 서울역사가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되어있지만 철도의 그림자가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또 하나의 주요한 철도유물의 하나인 용산철도병원마저 철도의 품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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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 본래의 신촌역 |
용산철도병원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오래전 등록문화재 136호인 경의선 신촌역사가 신촌민자역사 건립과정에서 무단 철거되었다가 복원과정에서 모양이 반대로 바뀐 짝퉁 신촌역사가 그대로 등록문화재 지위를 잃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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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복원된 신촌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