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audio-visual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marineset
2023. 6. 3. 04:59
돌아와요, 부산항에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음악 영화 / 우리들 삶
2016.01.31. 13:57
미소라 히바리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Come back to Busan harbor)
오늘 소개할 노래는『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누나의 목소리로 듣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되겠다.『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누나는 지난번에 소개(☞ [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 北の宿から(키타노 야도까라))했던『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와 함께 일본 演歌(엔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일본의 이미자”라 불린다.
《『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가 재일한국인이듯『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역시 한국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이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건너온 재일교포였다. 그는 요코하마에서 생선 장수를 했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여『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를 낳았다. 전쟁 후 미소라 히바리가 가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어머니는『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의 미래를 위해 한국계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아버지와 이혼을 한다. 아버지는 계속 생선장수를 하고...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는 그를 공개적으로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가끔 시간이 나면 새벽에 차를 달려 요코하마로 가서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때 만났던 풍경을 소재로 한 노래가 “항구의 13번지”이다. ‘긴 여로의 항해가 끝나서 배가 항구에 머무르는 밤에 바다에서 힘들었던 것을 술잔에 모두 잊어버리는 마도로스의 술집 아 항구의 13번지…….’ 뭐 이런 노래되겠다.
그녀가 몹쓸 병에 시달리던 무렵, 그녀에게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 제의가 들어온다. 가수로서는 일생일대의 명예일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 요청을 거절한다. 그때 기자들이 “왜 그런 좋은 기회를 마다했는가?”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일본을 떠나서 공연하고 싶은 나라는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한국입니다. 제 아버지의 나라 한국입니다”라고……. (허나 이것은 만들어진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는 생전에 공식적으로 한국계임을 밝힌 적은 없다고 한다.) 》[http://nasanha.egloos.com/10909973 에서 발췌]
뭐 하여튼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가 한국공연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한(恨)많은 아버지의 나라, 그 곳에서 죽기 전에 공연을 하기를 그렇게 원했었는데, 이것을 막은 곳이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에는 일본어로 공연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공연이 무산되자 일본어로 공연이 안 되면 영어로 부를 테니 공연을 하게 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이 마지막 요구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공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89년 6월 24일에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일본을 조국으로 알고 그렇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위대한 한 가수의 살아생전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항상 얘기하듯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술책이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일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서 말이야.
어떻든 이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하고, 편협하고, 파렴치한 짓인가? 자신의 조국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워보겠다는 그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마저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들이 아직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암울한 시대…….
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남도 김해시라서 더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 노래, 그래서인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한국어로 부른다.
아버지의 고향을 그리면서 불렀을 노래,『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 보시길…….
[출처]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돌아와요, 부산항에...|작성자 뜰 앞의 잣나무
2016.01.31. 13:57
미소라 히바리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Come back to Busan harbor)
오늘 소개할 노래는『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누나의 목소리로 듣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되겠다.『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누나는 지난번에 소개(☞ [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 北の宿から(키타노 야도까라))했던『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와 함께 일본 演歌(엔카)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일본의 이미자”라 불린다.
《『都はるみ(미야코 하루미)』가 재일한국인이듯『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역시 한국계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이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건너온 재일교포였다. 그는 요코하마에서 생선 장수를 했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여『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를 낳았다. 전쟁 후 미소라 히바리가 가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어머니는『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의 미래를 위해 한국계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아버지와 이혼을 한다. 아버지는 계속 생선장수를 하고...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는 그를 공개적으로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가끔 시간이 나면 새벽에 차를 달려 요코하마로 가서 먼발치에서 아버지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때 만났던 풍경을 소재로 한 노래가 “항구의 13번지”이다. ‘긴 여로의 항해가 끝나서 배가 항구에 머무르는 밤에 바다에서 힘들었던 것을 술잔에 모두 잊어버리는 마도로스의 술집 아 항구의 13번지…….’ 뭐 이런 노래되겠다.
그녀가 몹쓸 병에 시달리던 무렵, 그녀에게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 제의가 들어온다. 가수로서는 일생일대의 명예일 수 있었지만 그녀는 그 요청을 거절한다. 그때 기자들이 “왜 그런 좋은 기회를 마다했는가?” 물었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일본을 떠나서 공연하고 싶은 나라는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곳은 한국입니다. 제 아버지의 나라 한국입니다”라고……. (허나 이것은 만들어진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는 생전에 공식적으로 한국계임을 밝힌 적은 없다고 한다.) 》[http://nasanha.egloos.com/10909973 에서 발췌]
뭐 하여튼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가 한국공연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한(恨)많은 아버지의 나라, 그 곳에서 죽기 전에 공연을 하기를 그렇게 원했었는데, 이것을 막은 곳이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에는 일본어로 공연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공연이 무산되자 일본어로 공연이 안 되면 영어로 부를 테니 공연을 하게 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이 마지막 요구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공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89년 6월 24일에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일본을 조국으로 알고 그렇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위대한 한 가수의 살아생전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항상 얘기하듯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술책이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일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줘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서 말이야.
어떻든 이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하고, 편협하고, 파렴치한 짓인가? 자신의 조국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워보겠다는 그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마저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들이 아직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암울한 시대…….
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남도 김해시라서 더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 노래, 그래서인지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한국어로 부른다.
아버지의 고향을 그리면서 불렀을 노래,『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감상해 보시길…….
[출처] [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 돌아와요, 부산항에...|작성자 뜰 앞의 잣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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