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뿌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역사를 살펴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 간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분쟁은 깊고 오래된 역사적 갈등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현황과 분쟁의 원인을 살펴봤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지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기습적으로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3천여 명의 무장대원을 투입해 이스라엘인과 외국인 1천200여 명을 학살하고, 253명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가자지구 공습에 나섰습니다. 공습 이후 이스라엘은 지상군도 투입했습니다. 자국을 공격한 하마스를 비롯한 아랍 무장단체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3만 4천49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 도시에서부터 하마스의 주요 거점인 ‘가자시티’까지 점령하고, 아랍 무장 단체가 소규모 무장 테러를 일으키는 서안지구에 대한 공습도 강행했습니다.
지난 2023년 11월,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인질 교환을 위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1주일 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다시 지상군을 투입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병원, 학교, 아파트 등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행해졌습니다. 공습 지역에 머무를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점차 아래로 이동했고 결국 최남단 도시 ‘라파’에 밀집했습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 중 약 120만 명이 라파에 머물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와 일부 이스라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벤야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완전한 승리’를 위해 라파에 지상군 투입을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완전한 소탕 이전에 종전은 없다’는 입장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5월 현재까지도, 이스라엘은 라파 동부 지역을 비롯한 가자지구 전 지역에서 공습과 지상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8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수많은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OCHA)에 따르면 전쟁 발생 이후 175일 동안 팔레스타인인 최소 3만 2천623명이 사망하고, 7만 5천92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UN 유니세프에 따르면 사망한 아동은 1만 3천여 명에 달합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민간인을 고려하지 않는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앤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부 장관은 두 세력의 분쟁을 두고 “국제법, 인도주의법, 전쟁법을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국 군인의 안전을 최우선한다는 이유로 가자지구 내 군사시설은 물론 병원, 아파트 등 민간 시설에도 무차별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습니다. 하마스 역시 민간인을 방패 삼아 공습을 막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마스가 의도적으로 민간인 대피를 막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중 약속,
오랜 갈등과 비극의 시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당시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지역에 욕심을 갖고 있었던 영국은 당시 아랍 지도자인 후세인 빈 알리(Hussein bin Ali)에게 아랍 국가를 만들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오스만 제국에 대한 ‘아랍 민족의 반란’을 약속받습니다.
이 약속은 영국령 이집트 책임자 헨리 맥마흔(Henry McMahon)의 이름을 따 ‘후세인-맥마흔 선언’이라고 불립니다. 아랍 민족의 반란으로 오스만 제국은 큰 타격을 입습니다.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고, 승전국인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 집단은 영국에 재정 지원을 약속하며 이스라엘 건국을 도와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영국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1917년, 당시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영국 외교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수립에 동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밸푸어 선언’은 UN의 전신인 국제연맹에 의해 승인받게 됩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 국가를 만들겠다는 ‘후세인-맥마흔 선언’과 유대인 국가를 만들겠다는 ‘벨푸어 선언’을 해 두 민족에게 ‘이중 약속’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강대국의 상반된 외교적 약속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역사적·종교적 의미가 깊은 지역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수도 예루살렘이 자리 잡았던 곳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랍인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교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 역시 팔레스타인 지역 내의 동예루살렘에 위치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이 몰려들게 된 것은 유대교의 ‘시온주의’에서 시작됐습니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민족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시온주의가 처음 등장한 1900년대에, 유대인들은 현재 이스라엘 수도인 텔 아비브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으로부터 매입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본질과 평화정착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수는 약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유입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더 늘어났습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피해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더욱 모여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탄생과
지난한 전쟁의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물러나고, UN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관리하게 됩니다. 1947년 11월에 열린 UN총회에서 발표된 제181호 결의안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 안에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를 각각 세우기 위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결의안은 통과됐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들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55%를 유대인 국가에, 45%를 아랍인 국가에 할당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 인구는 약 60만 명, 아랍인은 약 120만 명이었습니다.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2배가량 많았음에도 더 적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1948년, 제181호 결의안을 근거로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문을 낭독했고,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총 4번의 중동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이집트를 주축으로 한 아랍연합군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이스라엘은 1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지배하게 됩니다.
2차 중동전쟁은 1차에 이어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정면으로 부딪혔고,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유대인과 아랍인의 사이는 악화됐습니다. 이스라엘 내에서 ‘선제공격 주장파’가 정권을 잡자,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시리아를 선제공격하며 3차 중동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이집트와 요르단을 몰아냈으며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수에즈 운하,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점령했습니다. 지난 1967년, UN은 결의안 242호를 채택해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에서 새롭게 점령한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현재까지도 서안지구와 골란고원을 국제법상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선 이집트와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20일간 지속된 4차 전쟁은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현상 변경 없이 끝났습니다.
좁혀지지 않는 이견
양극화된 세력들
4차례의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아랍인과 유대인은 평화협정을 맺고자 노력했습니다. 지난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했습니다.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은 서로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으로 맡기도록 합의합니다. 그러나 협정에 합의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암살당하고,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합병을 주장하는 극우 강경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당선되며, 정국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졌습니다. 또한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가 온건파인 ‘파타’ 정권을 축출하며 가자지구를 장악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두고 ‘두 국가 해법’을 제시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에서 제시하는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의견을 재차 밝혔고. 하마스 역시 무장 공격을 통해 이스라엘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이스라엘은 「민족국가법」을 제정해 이스라엘이 유대인들만의 나라임을 법적으로 선언했습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필두로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습니다. 2023년 6월, 이스라엘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점진적으로 4천560채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촌 확대 정책을 통해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장벽을 세우고 군대를 파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영국·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등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마스를 비롯한 아랍 무장 단체 역시 이스라엘을 퇴출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국가를 세운다는 목표를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는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을 상대로 무장 테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장 테러는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어렵게 합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가 자칫 폭력 테러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양극단의 대립으로 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76년간의 뿌리 깊은 역사·종교·정치·경제적 갈등에서 비롯됐습니다. 특정 국가와 단체의 대립을 떠나 전쟁으로 인해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결코 용인될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민간인 보호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 오슬로 협정: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사이에서 이뤄진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를 통틀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Abrahamic religions)라 하고 세 종교는 형제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면 기독교 측은 맹렬히 비난한다. 특히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神)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참 이해가 안 됐다. 전 세계 모든 나라들, 미국의 일부 보수주의 개신교를 제외히고는 세 종교가 형제의 종교고 그 뿌리가 아브라함이라 보고 있는 이는 상식이다.
<https://www.breaknews.com/1067450>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