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관제야당’ 시대, 단식투쟁으로 돌파구 마련한 YS [한국정당사⑥]

marineset 2023. 8. 12. 05:40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7.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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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암흑기 속 단식 투쟁으로 돌파구 마련한 YS…DJ측과 힘 합쳐 신한민주당 창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전두환 정권의 등장으로 정치적 암흑기가 도래한 가운데, YS는 단식투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면서 서울에는 봄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짧은 봄 뒤엔 더 혹독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기존 정당들을 해체시키고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 JP(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반(反) 전두환 인사들을 강제로 정계에서 추방합니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 붕괴의 선봉에 섰던 신민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기존 정당들을 정리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1년 새로운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출범시킵니다. 이후 한동안 우리 정치는 사실상 ‘1당 독재’ 구도로 흘러갑니다. 이 시기에도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등의 야당은 존재했지만, 신군부에 협조적인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관제(官製) 야당’이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었습니다.

이 같은 ‘정치의 암흑기’는 3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DJ는 자서전에서 당시를 아래와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다. 언론의 자유는 철저히 유린되었고, 인권은 권력에 짓밟혔다. 야당은 있으나 도대체 보이지 않았고, 민주 투사들은 감옥에 있거나 가택 연금을 당했다.”

모진 속박과 억압으로 희망마저 꺾여가던 때, 횃불을 들고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YS였습니다. 가택 연금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 그는 비장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를 맞이하는 1983년 5월 18일. YS는 정치범 석방·정치활동 규제 폐지·해직 인사 복직·언론의 자유 보장·독재헌법 폐지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돌입합니다.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민주화 투사’ YS가 목숨을 건 단식에 돌입하자 전두환 정권도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병상 앞에 음식상을 갖다놓기도 하고, 해외로 나갈 것을 권유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YS의 단식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YS는 “나를 해외로 보내려면 시체로 만든 뒤에 부치라”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YS 부인 손명순은 일일이 전화로 외신 기자들에게 단식 사실을 알렸고, 미국에 있던 DJ도 교포들과 함께 워싱턴 한국대사관에서 백악관까지 ‘김영삼을 구출하라’는 팻말을 들고 가두행진을 벌였습니다. 23일간의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된 YS는 결국 병상에 누워 단식 중단을 선언했지만, YS의 단식투쟁은 가택 연금 해제와 더불어 야권 인사들의 각성을 가져왔습니다.

연금이 해제된 YS는 ‘범야권연대’ 구성을 제안,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모두 참여하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발족합니다. 그러나 민추협 내에서는 제12대 총선 참여 여부를 두고 내부 갈등이 발생했는데요. 전두환 정권이 선거를 두 달 남짓 남겨두고 정치활동 해금(解禁) 조치를 시행하자, 정치규제에 묶이지 않은 사람들만이라도 총선에 참여하자는 ‘참여파’와 선거에 참여하는 건 전두환 정권에게 정당성만 부여해주는 꼴이 될 거라는 ‘거부파’로 나뉜 겁니다.

결국 민추협은 ‘선명 야당’을 기치로 내걸고 제12대 총선에 참여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창당된 정당이 바로 신한민주당입니다. 당초 이들은 신민당을 당명으로 하려 했으나, 전두환 정권 하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거부하자 약칭을 신민당으로 할 수 있는 신한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신한민주당은 제12대 총선에서 ‘사고’를 치며 전두환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게 됩니다.

5·18 쿠데타로 모든 민주세력이 꼼짝 못하고 있던 엄혹했던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독재 정권에 대한 정치권의 투쟁이 시작됐다. 단식 투쟁 1년을 기념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가 돼서 만든 조직이 바로 민주화추진협의회다. 그 민추협이 신한민주당을 만들었고, 민주세력이 정치권에 등장하고 투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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