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중국 울린 조선족 음악가, 그의 발자취 한눈에…

marineset 2023. 8. 23. 06:43

                                                             등록 :2009-10-23 19:05수정 :2009-10-23 23:53

 
하얼빈시에 개관한 정율성 전시관에 있는 그의 사진. 왼쪽 리본에는 ‘율성, 당신의 음악이 음악의 도시에서 피어났습니다’라는 아내의 글이 쓰여 있고, 오른쪽 리본에는 ‘아빠, 인민들은 아빠를 잊지 않았어요’라는 딸의 글이 적혀 있다.

 

 

 

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정율성 기념관 7월에 하얼빈 개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여…”세계의 시선이 쏠린 지난 1일 중국 건국 6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이 행진할 때 울려퍼진 장엄한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가 한국에서 태어나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한 조선족 음악가 정율성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겐 아직 낯설다. 191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중국과 북한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인민음악가로 중국인들에게 널리 존경받고 있으며, 최근 ‘신중국 창건 100대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남북한과 중국을 무대로 위대한 음악가이자 항일 독립투사, 혁명가로 치열하게 살다간 그의 62년 생애와 음악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지난 7월 말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문을 연 ‘인민음악가 정율성 전시관’에 보금자리를 얻었다. 지난 21일 찾아간 전시관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은 그의 삶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그가 한-중 두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되기를 기대하는 글들을 방명록에 남겼다.2층 건물 1350㎡의 공간에 진열된 200여점의 자료 중 첫 부분은 정율성이 1933년 의열단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였던 셋째형을 따라 중국에 와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모습들이다. 계단과 2층 전시관에는 그가 본격적으로 혁명에 뛰어들게 되는 중국 공산혁명의 근거지 옌안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그 속에서 연인 딩쉐쑹과 사랑을 키워가며 창작과 연주에 몰두하던 낭만적인 모습들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 정율성이 작곡한 ‘연안송’은 백성들의 입을 통해 전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홍군 전사들의 사기를 드높인 ‘팔로군행진곡’은 이후 1988년 덩샤오핑의 명령으로 ‘중국인민해방 군가’로 공식 확정됐다. 1945년 이후 5년 동안 정율성이 북한에서 평양음악대학 작곡부장 등으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들, 김일성이 수여한 상장 등도 공개돼 있다.정율성이 잠시 머물렀을 뿐인 하얼빈시에 전시관이 건립된 데는 그의 업적을 기리려는 하얼빈의 조선족 인사들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전시관 관계자는 “조선족인 하얼빈시 문화국 부국장 등이 정율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베이징에 있는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를 찾아가 전시관 건립을 적극 건의하고 설득해 하얼빈에 전시관을 짓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얼빈/글·사진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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