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複雜單純

효순,미선사건부터 지금까지...다시보는 촛불집회의 역사

marineset 2023. 5. 30. 05:31
촛불집회의 효시가 된 PC통신인의 유료화 반대 시위



네티즌이 조직적으로 오프라인 세계의 정책에 뛰어든 최초의 사건은 1992년의 ‘케텔 유료화 반대 집회’ 다. 그때까지 한국경제신문사 소유의 대형 PC통신망이었던 케텔(KETEL)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케텔이 한국PC통신으로 인수되면서 1992년 2월 18일에 전격적으로 유료화를 발표한다. PC통신인들은 유료화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유료화 방법에 대해서는 반발했다. 요금의 100%, 신용카드 선납입 등은 당시 대다수가 학생이었던 케텔 사용자에게 케텔을 떠나라는 소리인 동시에 동아리를 폐쇄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에 케텔 내 60여 개 동아리 지기들이 모여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선납입반대, 지로결제, 학생할인, 마감일자 연기 등을 제안한다.



그러나 한국PC통신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진행하자 동아리 지기들은 동아리 게시판을 폐쇄하며 대항한다. 또한 하이텔 사용자들은 2월 24일부터 한국PC통신 사옥 앞에서 촛불집회를 벌이며 이에 저항했다. 물론 이런 시위를 통해 유료화 서비스가 무료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일방적인 정책에 대해 네티즌이 반발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온라인상의 네티즌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후 ‘동호회협의회’ 를 구성한 후에 한국PC통신과 협상을 통해 3개월 동안 여러 가지 협상을 하면서 통신인들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고, 5월 1일부터 ‘코텔’ 이라는 이름으로 유료화가 시작된다.



최초의 촛불집회 이후 네티즌들은 PC통신과 인터넷을 거치면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진출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네티즌에 의해 주도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2002년에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두 여동생을 기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서 크게 열린 촛불집회다. 당시 이 촛불집회는 오마이뉴스 게시판에서 ‘앙마’ 라는 ID의 네티즌이 2002년 11월 28일 촛불집회를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 집회는 후에 가해자인 미군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반미 집회로 번졌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2005년에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촛불집회는 2008년의 광우병 파동 때였다. 광우병 촛불집회가 이전과 다른 점은 10대 여학생의 참여로 집회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10대 여학생이 주도하고 시위를 생중계한 광우병 촛불집회



2008년 5월에 한국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는 여중고생의 참여에 의해 촉발된 경우다. 2008년 5월 2일과 3일의 촛불집회 관련 사진을 보면 여중고생의 비율이 약 70% 정도에 달할 정도로 여중고생의 참여가 압도적이다.



서로 다른 동네에 사는 10대들이 촛불집회를 제안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웹과 휴대폰 등의 도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SMS와 메신저, 채팅, 카페, 인터넷 게시판 등은 10대들의 약점이었던 시간과 경제성을 보완해주었다. 5월의 촛불집회는 인터넷 게시판과 SMS를 통해 논의되고 전파되었는데, 인터넷 보급 이전이라면 불특정한 10대가 한 자리에 모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공짜경제를 제공하는 웹과 함께 10대들의 참여를 이끈 또 다른 요소는 한글이다. 한국은 초등학생이 어른용 정보를 공유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일본이나 중국은 ‘검색(檢索), 경제(經濟)’ 와 같은 용어들이 한자로 표기되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종합일간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낱말 철자를 따로 외워야 하는 영어권에서도 초등학생에게 워싱턴포스트지는 난이도가 높다. 반면 유치원 때부터 한글 읽기가 가능한 한국은 포털 뉴스에서 어른과 초등학생이 함께 뉴스를 읽고 덧글로 싸우는 촌극을 벌인다. 유치원 연령인 6세부터 19세 사이의 45.9%(한국인터넷진흥원, 2007)가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것도 한글 덕분이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어른의 경험과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투표권이 없는 10대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 2008년 5월의 촛불집회다.



웹은 또한 촛불집회를 이끄는 데 일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촛불집회를 살리고, 촛불집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도 계속 도움을 주었다. 시민과 전경의 대치 상황은 개인 인터넷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거나 동영상UCC사이트를 통해 공유되었다. 국내 동영상 사이트에서 삭제된 동영상은 유튜브와 같은 해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전파되면서 ‘정보망명지’ 라는 불명예스런 낱말을 창조해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내용을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통해 전했고, RSS라는 배포도구와 블로거뉴스 같은 네티즌 참여형 뉴스서비스를 통해 전 국민에게 빠르게 전달되었다. 다음 아고라와 같은 참여형 게시판은 각종 주제에 대한 토론장의 기능을 수행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웹을 통해 시민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직접 민주주의에 훨씬 가까워진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한 민주화 운동 및 시민 운동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케텔 촛불집회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네티즌은 PC통신 시절부터 사이버공간의 문제 및 현실공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PC통신 서비스인 하이텔의 바통모는 바른 통신 세상을 위해 노력했다. 1998년에는 〈진보넷〉을 만들어 각종 운동단체를 위한 공간 및 토론이 제공되었다. 또한 2005년 11월에 발생한 황우석 박사 논문 의혹 사건을 제기하고 증거를 제시한 곳은 브릭이었다.







사이버 외교단 반크의 활약



온라인 단체 반크(www.prkorea.com)가 외국 사이트와 교과서에서 잘못 표기한 한국 지리의 명칭을 수정하는 사이버 외교단으로 활동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시민활동이 세계적인 활동으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크는 1999년 박기태 씨가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이메일 교류에 대한 개인홈페이지를 만든 것에서 발전한 사이트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여 한국을 알리기 위한 단체로 반크(VANK :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를 만들고, 1만 명이 넘는 회원을 통해 외국 사이트 등에 잘못 알려진 한국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 있다. 반크는 온라인 사이트가 오프라인의 NGO 단체로 발전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출처] 063. 촛불집회의 시작, 1992년 케텔 유료화 반대 집회|작성자 레오


[그래픽뉴스] 효순,미선사건부터 지금까지...다시보는 촛불집회의 역사


2016.11.21. 14:05




[한국스포츠경제 윤사랑]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60ㆍ여) 씨 개입 의혹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촛불집회가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열린다.
이번 집회는 서울에 50만명, 전국에서는 100만명이(집회 측 추산)참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치적 이슈마다 켜진 촛불이 벌써 열다섯해를 넘겼다.
■2002 효순미선 사건
2002년 6월, 여중생 두 명이 주한 미 육군 M60 AVLM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이 사건으로 SOFA 개정의 목소리가 촉발됐고 11월 추모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서울 광장에서 대규모로 이어진 첫 촛불집회)
■2004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시민들은 이에 반발하는 촛불집회를 열었고 이를 주도한 한나라당은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했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
■2008한미 FTA 소고기 협상문제
한미 FTA로 불거진 ‘미국산 소고기 수입 재개 협상 반대’로 약 70만명이 모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촛불집회가 활발해지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국민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72시간 연속 집회’ ‘살수차’ 등 전에 없던 시위 행태 등장)
■2011반값 등록금 공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요공약 중 하나인 반값 등록금의 대안으로 등록금 후불제가 추진되었다. 일부대학생 단체는 대선 공약을 대국민사기극으로 규정하고 규탄하며 집회로 이어졌다. (민주당 손학규, 민주노동당 이정희 등 각계 시민단체 참여)
■2013세월호 여론조작 의혹
세월호 침몰에 대한 사고 진상 규명과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 의혹에 관련하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같은날 도심에서 열린 보수단체들의 맞불 집회)
■2016 최순실게이트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최순실 등 비선 실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주최측 추산 100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로 시민들이 나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며 평화시위를 이끌었다. 2016년 촛불집회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근처 율곡로까지 행진 허용)

윤사랑 기자 yoonsr@sporbiz.co.kr
<저작권자 © 한국스포츠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그래픽뉴스] 효순,미선사건부터 지금까지...다시보는 촛불집회의 역사|작성자 한국스포츠경제
 
 

  • 촛불을 들면 좌파가 되고 태극기를 흔들면 박사모가 된다는..
    편견이 우리 사회를 더욱 오만하게 만드는것 같다.
    이제는 친한 친구간에도 말 조심을 해야 하고 성향파악을
    필요로 하기에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는데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는
    비겁자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촛불이던 태극기이던 어느 편에라도 줄을 서서
    큰 목소리로 박근헤 즉각 하야..탄핵 무효를 외쳐야
    하는데, 말 없는 다수의 군중은 참 초라하다.
  •  욕먹는 노안들 2017/01/20 11:38 # 삭제 답글
  • nivea46분전보수라는 허울아래
    이 나라를 병들게하는 악질들.
    보수없인 일어서지도 못할 보수에 죽고사는 것들.
    평생 일당 보수나 받아먹고 영혼 팔아가며 살거라.
    기생충들.
    pusi353243분전보수라고 하는 쓰레기들.
    조윤선이 어버이연합 쓰레기들 관제데모 뒤에서 지휘했다고하던데.. 사실이구만,
    전경련에서 뒷돈대주고, 청와대에서 데모시키고... 저런쓰레기들이 없어져야한다.


    gmqgufrnl35분전늙은들은 죽어야한다는말이 맞는가부다

    비까리39분전저 늙은이들 안보이는세상에 살고싶다
    쌍판들이 악마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
    겨울바람8분전김기춘과 조윤선이 개버이연합이니 뭐니 하는 수구꼴통 늙은것들 모아 데모하라고 부추켜 벌인 시위가 수도없이 많았다는게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그 잔당들과 부역자놈들 그리고 개무식 무개념 일부 늙은이들이 나라 망하라고 꽹과리치며 활개치는 이 나라를 하루 빨리 정상화 시켜야한다!!!


    Tae Jung9분전저런 정신 줄 논 늙은이들을 왜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하는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판단못하는 치매말기 노인들을 내 세금으로 도와준다니 참 어이가 없다




    zmffkfk9분전보수라는 말도 쓰지마세요 그저 꼴통 쓰레기 기생충들일 뿐입니다
    John6112분전보수라는 말대신 박가한테 세뇌당한 집단이라합시다. 보수는 무슨! 그리고 제발 대통령이 왕아니고 신이아니고 국민들에의해 선택되어진 인간!!!!!!!!!!!!이라는거 잊지맙시다. 북한의 김가네랑 ㅎ대한민국 박가네나 똑같은거 맞죠?

    xkdla14분전저 추악한 늙은이들 어쩌냐
    정권바뀌면 저 늙은이들부터 청소해야 대한민국이 깨끗한 나라가 된다..

    아름다운17분전보수라고 하지마라....................수구 꼴통세력들
    늙은 산송장들 대려다가 일당줘가며 환관내시짖거리 하는 바보멍청이들
    당장 수사해서 어버이연합과 ,닭사모,닭모연합 구속해라.




  •  연평해전과 촛불 2017/01/20 16:05 # 삭제 답글
  • 연평해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축구 보러 갔지만 탄핵 안됐다





    63 조성일 | 2017-01-11 | 조회수: 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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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E_media_17-02.pdf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KBS1 '생방송 일요토론'에 출연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평해전 때 축구를 보러 갔지만 탄핵은 안 됐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한국 언론들은 제목에서부터 ‘팩트체크’ 혹은 ‘사실은?’이라며 정 주필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기사로 포털을 도배하고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연평해전이 일어난 날 김 전 대통령은 한국과 터키의 3ㆍ4위전을 시청할 계획을 취소했기 때문에 축구를 보러 갔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언론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팩트부터 체크해 보자. 한국과 터키의 3ㆍ4위전 관람을 취소한 것은 맞다. 그러나 다음날인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로 출국해 독일과 브라질의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했다. 이 결정은 지금도 네티즌들에게 회자되며 연평해전으로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대통령이 해외로 출국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출국한 데는 북한이 보낸 통지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따르면 북한이 사건 직후 보낸 통지문에서 "이 사건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성을 띤 것이 아닌 우발적으로 발생" 이라고 밝히자 이를 믿고 출국을 결심한 것이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측의 무전을 감청하여 북한 경비정 684호로부터 교전 이틀 전에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내용을 입수해 계획적인 도발임을 주장했지만 햇볕정책이 좌초될 것을 우려한 대통령은 북한의 통지문을 더 신뢰했다. 우리 군보다 북한을 더 믿었다는 점에서 이런 정부의 태도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정규재 주필은 이 부분을 지적했다. 연평해전은 6월 29일에 일어났지만 교전이후 긴장상황을 고려하면 최소한 수일 후 까지 연평해전 기간에 속할 수 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이 출국한 30일까지도 비상경계태세 강화령이 유지되었고 서해 5도를 오가는 여객선 운항도 금지된 상태였다. 교전 후 침몰한 해군경비정의 인양과 실종자 수색이 시작도 되기 전이다. 이러한 시기에 김 전 대통령이 축구를 보러 일본으로 간 것은 명백한 팩트다.



    그러나 언론은 정 주필의 발언을 비틀었다. 본 발언과 무관한 한국과 터키의 3ㆍ4위전을 김 전 대통령이 시청을 취소한 사실을 거론하며 정 주필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결론 내렸다. 애초 3ㆍ4위전을 이야기 한 적이 없고 그것을 취소했다고 해도 다음날 일본으로 출국해 결승전을 관람한 사실이 거짓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해 부정하는 방식으로 정 주필의 발언은 거짓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하여 잘못된 주장으로 만들고 그것을 반박하는 방식을 ‘허수아비 논리’라고 한다. 본래의 주장을 왜곡한 뒤 반박하여 제3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이를 본 사람들은 속게 되고 원 주장자를 비난하게 하는 효과가 생긴다. 이런 방식은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려 할 때 주로 이용되는데 특히 언론사같이 일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정보 전달력의 불균형이 있을 경우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애초에 왜곡된 사실에 의한 논증이어서 생산적인 논의를 방해하는 문제가 있다.



    이날 토론과정에서 해당 발언은 주된 내용도 아니었고 토론의 쟁점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자리 문제, 경제문제, 정치문제 등에서 다양한 쟁점이 오갔다. 그러나 언론은 이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잠깐의 언급에 지면을 할애했다. 이쯤 되면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언론은 이런 식으로 선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 주필이 비판한 대상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이는 정파적 입장에서 자극적인 소재가 된다. 그것이 진보적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언론을 만났고 거대한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언론이 진보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선동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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