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131

또 다시 분열한 야권과 신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④]

또 다시 분열한 야권과 신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④]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21 17:45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윤보선 탈당으로 분열했던 야권…제6대 대선 앞두고 신민당으로 다시 통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보선 탈당으로 분열했던 야권은 제6대 대선을 앞두고 신민당으로 다시 통합된다. ⓒ시사오늘 김유종 대한민국 야당사는 ‘분열과 통합의 역사’라고들 합니다. 대통령이라는 확실한 중심이 있는 여당과 달리, 야당은 본질적으로 구심력(求心力)이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민중당(民衆黨)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창당 직후부터 윤보선계와 박순천계가 반목(反目)했던 민중당은, 불과 1년도 안 돼 민중당과 신한당(新韓黨)으로 분리됩니다. 민중당 분당(分黨)..

박정희 등장과 민중당으로 하나 된 야권 [한국정당사③]

박정희 등장과 민중당으로 하나 된 야권 [한국정당사③]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14 09:07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5·16 군사정변으로 기존 정당 해체…1963년 정치활동 재개 허용 후 야당 난립 한일 국교 정상화 계기로 야권 통합 목소리 커져…민정당·민주당, 민중당으로 통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1963년 정치활동 재개 허용 이후, 야당이 난립하면서 박정희 정권은 안정적으로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 ⓒ시사오늘 김유종 정국(政局)이 혼란스럽다는 건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물리력을 손에 쥔 쪽은 ‘딴생각’을 하기 마련이죠.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육군 장교들은 무력..

자유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분열 [한국정당사②]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6.07 18:05 댓글 0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4·19 혁명으로 자유당 몰락하고 민주당 정권 잡았지만…구파·신파 갈등에 민주당도 분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4·19 혁명으로 자유당이 몰락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내부 갈등으로 민주당도 분열의 길을 걷는다. ⓒ시사오늘 김유종 창당 이듬해인 1956년. 민주당은 제3대 대선을 앞두고 신익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이때 신익희가 내세운 구호가 그 유명한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죠.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던 신익희는 선거 유세를 위해 전주로 가던 중 뇌일혈로 졸도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이승만의 집권은 4년 더 연장됩니다. 1960년 제..

양당 정치의 시작…자유당과 민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①]

양당 정치의 시작…자유당과 민주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①] 정진호 기자 승인 2023.05.30 20:55 댓글 1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 글씨키우기 이승만 재선 위해 만들어진 자유당…민주당, 이승만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해 창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우리 정치권에선 종종 ‘뿌리 논쟁’이 일어납니다. 상대 진영의 모태(母胎)를 ‘친일 세력’, ‘종북 세력’ 등으로 규정해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고, 자신들이 정통성을 독점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전략입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여야 대표가 ‘친일 논란’에 대해 입씨름을 벌였던 것을 상기하면, 상대의 뿌리를 공격하는 책략이 꽤 효과적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언쟁을 보고 있으면 허무할 때가 많습니다. 얽히고설킨 우리나라..

비목(碑木)

UPDATED.2023-06-06 10:32 (화) 국민가곡 '비목'의 탄생 비화, 이랬구나 청년 장교 시절 작사한 한명희씨가 말하다 "이런 사람은 이 노래를 부르지 말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평화로 3481-70 비목공원에 있는 "비목" 모습으로 6.25전쟁 당시 죽어간 젊은이들의 비애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이다. 빼대만 앙상하게 남은 관솔위에 걸린 녹슨 철모와 가시철조망이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말해주고 있다. ⓒ 오문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시인 모 윤숙 毛允淑 -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역대 대만/중국 주재 한국대사/대표 명단

역대 대만/중국 주재 한국대사/대표 명단 역대 주대만 한국대사/대표 명단(1948.11-2014.03) 特使 鄭桓範(정환범) 1948. 11 ~ 1949. 1 初任大使 申錫雨(신석우) 1949. 8 ~ 1950. 3 駐中華民國(대만)大使館 (1949. 7. 29 대사관으로 승격) 2任大使 李範奭(이범석) 1950.12 ~ 1951. 9 3任大使 金弘壹(김홍일) 1951.10 ~ 1960. 6 4任大使 白善燁(정환범) 1960. 7 ~ 1961. 7 5任大使 崔用德(최용덕) 1961. 7 ~ 1962. 7 6任大使 金信(김신) 1962.10 ~ 1971. 2 7任大使 金桂元(김계원) 1971. 3 ~ 1978.11 8任大使 玉滿鎬(옥만호) 1978.11 ~ 1981. 5 9任大使 金鍾坤(김종곤) 1981...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27/07554006-e640-4023-94d3-f7561bd8bca2.jpg");'> 채인택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ciimccp@joongang.co.kr + 구독신청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9.02.27 06:00 수정 2019.02.27 15:23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6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과한 중국·베트남 사이 국경지대는 딱 40년 전 중국이 베트남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 땅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침공한 19..

국공내전(國共內戰)

국공내전(國共內戰) 1. 국공내전의 배경과 원인 1) 일본의 패전 1945년 8월 일본군이 항복하면서 8년간에 걸친 전쟁에서 중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오랜 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제2차 국공합작을 거쳐 국민당 정부군과 공산군이 함께 항일전에 참여해 왔기 때문에, 공동의 적이었던 일본의 항복은 곧 두 세력 간의 숙명적인 무력대결을 예상케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이 항복하기 전부터 양자 간의 긴장관계가 팽팽했던 데다가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컸기 때문이었다. 전쟁 종식 이전부터 전후구상에 대한 국·공 양측의 입장 차이가매우 컸으며, 패전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해방구를 접수하는 문제에서부터 양측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