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白石이 ‘번역’에 집중한 이유
是非世說
2012년 09월 10일 (월) 12:29:39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비가 후두둑 거렸다. 돈강에서는 벌써 땅거미 들 때 연속되는 자지러진 소리를 내면서 얼음이 우적거리더니… 희퍼리스레한 하늘을 해가 헤엄쳐 가고… 별이 아니라 파라스름 하면서도 노란 빛깔의 올찬, 알지 못할 열매가 잎사귀 줄기에 달려있는 것 같이 뵈었다.”
러시아 문호 미하일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에 나오는 대목이다. 러시아어로 된 원문은 읽어보지 못해 모르겠으나, 소설 속 돈강의 분위기를 이토록 생동감 있는 감각으로 표현해낸 번역문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반세기도 훨씬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 읽어봐도 어디 한 구석 후지고 어색한 데가 느껴지지 않는 글 아닌가.
바로 천재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백석(1912~1996)이 번역한 글이다. 백석은 탁월한 시어, 특히 맛깔스런 토속어를 구사하는 어휘와 주제의 독창성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인이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제일 사랑하는 ‘시인 중의 시인’으로 꼽혀지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다 백석이 이처럼 탁월한 번역가로서의 재능과 풍모를 지니고 있는 게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시인 백석과 더불어 번역가로서의 백석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 백석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그의 번역본 40여권이 새롭게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백석 자료 수집가이자 자유기고가인 ‘송준’이란 분이 자신의 필생의 역저인 『시인 백석』을 출간, 그 속에 수록된 번역권 등 백석 관련 자료를 공개한 것이다. 전 4권으로 된 이 책에는 그동안 제목만 전해지고 실물을 찾지 못했던 백석의 번역서인 『테스』, 『희랍신화』, 『체호프』, 『푸시킨 詩선집』 등 40여권의 번역 단행본이 공개되고 있는데, 양과 질에 있어 백석 번역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동호 고려대 교수(국문학)에 따르면 지금껏 알려지기로 백석은 소설의 경우 1940년 『테스』를 시작으로 1956년까지 장편 4편과 단편집 1권, 중편 동화집 1권, 단편 2편 분량을 번역했다. 이와 함께 1953년부터 1957년까지는 사실상 시 번역에만 몰두, 확인된 것만 현대시 197편과 동화시 11편 등 모두 208편에 이른다. 방대한 양이다. 이번 공개된 백석 번역서 목록에 이런 내용과 함께 번역 작품이 구체적으로 소상하게 포함돼 있어 작품과 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는데, 이들 번역서가 단계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라 하니 기다려진다.
백석이 시인이면서 한편으로 번역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일까. 백석은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에 남았다. 고향(평북 정주)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는 천재시인인 그에게 사상성이 강조되는 詩作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서의 次善이 번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다. 김일성 체제 미화의 제물로 그의 시가 동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별로 상관없는 번역작업에 몰두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었다는 얘기다.
“…엄마 목소리는 너무도 가늘어, 엄마 나한테는 먹을 것 말고, 아이보개 시중꾼을 구해다 줘!” 백석이 번역한 러시아 동화작가 마르샤크의『철없는 새끼 쥐의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먹을 것 말고, 시중꾼을 달라’는 구절에서, 북한 체제의 냉대 속에 양강도 개마고원지대 벽촌인 삼수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농사와 양을 치며 살다 생을 마감한 백석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묻어난다. 그러고 보니 마침 올해가 백석 탄생 100주기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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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백석, 열렬하고도 슬픈 생애에 신화가 된 사랑 이야기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시인 백석, 그의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을 촘촘하게 복원하여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백석의 연인 김자야의 산문 『내 사랑 백석』이 2019년 김자야 여사의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내 사랑 백석』은 20대 청년 백석의 꾸밈없는 모습과 섬세한 마음, 문우들과의 교우관계, 그리고 그의 시가 발산하는 애틋한 정조의 이면 등을 그를 깊이 연모한 여성 김자야의 필치로 전하며,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온 산문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운명>에서는 김영한이 기생 김진향으로 입적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성장기와 젊은 시인 백석과의 애틋한 첫 만남을, 2부 <‘당신의 ‘자야’>에서는 백석으로부터 ‘자야’라는 아호로 불리며 절정의 사랑을 나누었던 3년의 이야기를, 3부 <흐르는 세월 너머>에서는 팔순에 가까워진 노년의 자야의 심경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는 김자야 여사의 집필과 출간을 뒷바라지하여 끝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을 세상에 알린 시인 이동순의 발문과 백석 연보를 덧붙였다. 멋쟁이였던 모던보이가 어떻게 토속적인 시를 쓸 수 있었는지, 그의 시에 나오는 ‘나타샤’ ‘고흔 당신’ ‘허준’ 같은 시어에 얽힌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교사와 기자로 일하다가 다시 만주로 떠나고 만 이유는 무엇인지 등, 젊은 날의 백석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백석 연구의 서브텍스트로서도 그 의의가 각별하다.
저자 및 역자소개
김자야 (지은이)
본명 김영한, 기명 김진향. 자야는 연인이었던 시인 백석이 지어준 아호이다.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자, 1932년 조선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청년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다. 1938년 백석이 함께 만주로 떠나자고 제의했으나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 기자로 다시 서울로 뒤따라온 백석과 재회하고, 청진동에서 살림을 차렸다. 1939년 백석이 만주의 신경으로 떠나면서 이별했다.
1953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만학으로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 있다.
스승 하규일 명인과 연인 백석을 추모하는 사업에 평생 매진했다. 『무소유』를 읽은 뒤 법정 스님에게 시가 천억 대의 서울 성북동 길상사 부지를 시주했고,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길상사가 문을 연 지 2년 만인 1999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숨을 거두기 열흘 전,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느냐”는 이생진 시인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천억이 그 사람(백석)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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