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욕은 인간 본성의 적나라한 표현

marineset 2023. 5. 31. 03:15


욕(辱)의 교육인간학

“”

글 : 강기수 동아대 교육학과 교수


욕을 할 상황에서는 하되, 해서는 안 될 욕, 예를 들면 신체적인 결함을 담은 욕, 상스런 욕, 악질적인 욕,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욕,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욕, 특정인을 비방하는 욕 등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

⊙ 성장세대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그들의 삶, 현실이 욕 나오게 하기 때문
⊙ 욕하는 청소년들만 나무라는 것은 어른들의 횡포
⊙ 욕은 성장세대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는 해방구

姜基洙
⊙ 50세. 부산교대, 동아대 대학원 졸업. 교육학 박사.
⊙ 동아대 교육대학원 부원장, 동아대 교육연구소 소장, 행복사회문화포럼 상임대표 역임.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욕을 무척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욕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고 무조건 꾸중하고 질책하는 것도 곤란하다.
“개ㅅㄲ”, “ㅆㅂ놈(년)” 욕(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욕의 소리도 점차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바뀌고, 외국어의 남용과 사이버 문화의 익명성 등에 힘입어 전에 볼 수 없는 욕지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욕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욕 나오는 세상이라서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쌍욕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욕은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평과 불만, 약자 하소연의 통풍구이며, 억눌린 사람의 욕구 분출이요, 감정의 발산이다. 뿐만 아니라 욕은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 감정 처리의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욕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오랜 기간 유교 관념 아래 생활해 왔던 한국인들이 욕을 더럽고 추악한 것이라 여기고 주로 천하고 배우지 못한 하층계급이나 쓰는 언어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은 드러내놓고 쓰지 않는 음지의 쓰레기 같은 언어라고 여겨왔고, 연구할 가치조차 없는 괄시와 천대,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나마 이루어진 연구도 대부분 국문학, 민속학, 사회학 영역의 연구로서 교육학적 접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욕에 내재한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여 욕의 부정적 측면과 아울러 욕의 긍정적 측면을 함께 제시한 김열규 선생의 구분에 주목해 욕을 의미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저주와 악담의 쌍욕

먼저 ‘저주와 악담의 쌍욕’이다.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간 본능을 직설적이고 여과 없이 그대로 표출하는 가장 흔히 사용하는 욕이다. 분노, 억울함, 서러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거칠고 반항적으로 쏟아내며,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저주로 드러내어 악담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 같은 놈”과 같이 동물에 빗대어 하기도 하며, “가랑이를 찢어 죽일 년”, “아작아작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머리통을 박살낼”, “눈깔을 빼버릴라”, “염병할”, “지랄하고 자빠졌네!” 등과 같이 상대방 신체에 대한 심한 훼손과 몹쓸 질병으로 위협적인 욕을 한다. 또한 “벼락을 맞아 뒈져라”처럼 죽음을 노리고 악담하기도 하며, “아가리 닥쳐”처럼 공격 충동이 드러난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런 쌍욕은 대부분 성(性)과 관련을 맺고 있다. ‘씹’이나 ‘좆’ 등, 성을 소재로 한 욕이 유독 많다. “존나”는 요즘 청소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욕 중의 하나다. “네미 붙을 놈아”, “더러운 짓”, “짐승만도 못한 짓”, “대롱에 ○을 박을 놈”, “○구멍 같은 년”, “붙어먹었다”처럼 성에 관련된 욕은 대부분 더럽고 추악하며 부정하다는 인식이 잠재돼 있다.

이처럼 저주와 악담의 쌍욕은 공격적이며 파괴적이다. 밖으로는 타인을 공격하고 안으로는 자신을 공격하여 자학하기도 한다. 감정의 억눌림은 좌절을 맛보거나, 실망에 빠지거나, 마음에 차지 않아 야속하게 여겨 즐거워하지 않거나, 우울증과 뒤엉킨다. 그래서 쌍욕은 감정의 억눌림보다 분출이다. 쌍욕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불길처럼 번지는 것이 특징이다. 쌍욕이 동반된 감정의 고조는 곧 폭력의 전조이다.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방귀욕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방귀욕은 쌍욕의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것에 비해 감정의 강도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노여움과 분노의 공격적 감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쌍욕과 달리 비판의식, 저항의식이 가미됐다. 방귀욕은 처지가 나은 쪽 또는 높은 쪽에서 아래를 향하면 깔봄이나 능멸이 된다. 역으로 아래에서 위로 향하면 다소간의 저항의식을 수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향하면 자조, 한탄, 자기 비하의 방어적 성격이 동반된다.

“그래 니 잘났다”, “저놈, 귀신이나 잡아가지”, “뛰어봤자 벼룩이지”처럼 상대방에 대한 공격성이 쌍욕에 비해 덜하지만 여전히 밑바탕에 증오, 미움, 분노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으며, 추가로 조소와 조롱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젠장맞을, 가난뱅이라 가진 거라곤 불알 두 쪽 달랑 차고 나왔으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신세 한탄과 자기 비하가 잘 나타난다. “이 팔자 더러운 년! 차라리 콱 뒈졌으면!”, “이년의 팔자! 남편 복 지지리도 없다”는 갑자기 남편을 잃은 부인이 스스로 신세를 한탄하면서 내뱉을 수 있는 욕이다. 이는 욕이 자연적 감정 발산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추슬러 나가는 감정의 배출과 정화의 연속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망할 놈의 세상하고는…”, “세상 돼 가는 꼴 하고는…”의 경우 힘없는 서민들의 세상에 대한 한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힘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하고 좌절하며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불신, 비판과 저항의식이 반영돼 있다.

방귀욕은 직접적인 쌍욕을 할 수 없는 힘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억울한 감정들을 배출할 수 있는 통풍구로서 활용하는 욕이다. 면전에서 욕을 하기보다는 자기 혼자 내뱉는 경우가 많으며, 마음속에 쌓인 찌꺼기를 배출해 자신을 정화한다.


애칭과 유희의 익살욕



익살욕은 욕이지만 전혀 욕 같지 않은 욕이다. 팽팽한 긴장감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탈춤,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등에서 즐기는 수법이다.
욕이지만 전혀 욕 같지 않은 욕이다. 팽팽한 긴장감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절묘하고 탁월한 표현으로 웃음을 선사하며, 자연스럽고 정감 넘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야, 이 문둥아, 니 잘 있었나”와 “야, 이 새끼야, 잘 있었나”, “문디 자슥” 등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반가움을 나타내거나 서로 친근한 관계임을 과시하는 애칭욕으로서 친구끼리 예사로 허물없이 주고받는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깊은 관계임을 보여준다.

“다 굽은 좆, 제 발등에 오줌 누기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오줌에 씻겨 나와 똥물에 헹군 놈”처럼 익살스럽고 독기 없이 그저 익살스러운 웃음을 선사하는 욕이다. 또한 “숭구리 당당”처럼 아무 뜻이나 의미가 없는 말장난에 가까운 욕도 있으며, “웃기는 짬뽕이다”, “지랄 방귀 쌈 싸먹네”처럼 기상천외한 비유법을 사용한 욕도 있다.

이들 욕에는 기발한 생각이 녹아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욕들이며, 일상의 규범적인 언어에서 오는 지루함을 새롭게 바꾸는 일종의 언어 창조활동이자, 유희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탈춤,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등에서 즐기는 수법이다. 이 욕은 단순히 웃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고소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쓴소리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비록 언어 파괴의 부정적 의미를 가지지만, 기지와 재치, 유머를 발휘한다는 면에서 욕으로서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

욕 중에서도 채찍욕은 하지 말아야 하는 욕이기보다는 먹지 말아야 하는 욕이다. 욕할 만하면 해야 하고, 욕먹어 싼 경우가 있다. 욕할 것은 해야 하는 만큼 욕 들을 짓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이처럼 채찍욕은 들어먹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되며 잘못된 것에 일침을 가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돼지같이 처먹기만 하는 놈”, “굼벵이 같은 놈”처럼 게으른 자, “오줌에 씻어 똥물에 튀길 놈”처럼 더러운 자, “염치는커녕 똥치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처럼 염치없는 자, “꼴값 떨고 지랄한다”처럼 허풍을 떠는 자 등을 응징하거나, 옛날 마을 어르신들께서 못된 짓을 하는 이를 보고 “오만방자하기가 후레자식 같으니라고…”처럼 일침을 가하는 교육적이며, 처벌성 강한 욕 등이 있다.

또한 “날벼락을 맞을 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할 놈” 등 그릇된 권력과 부정한 행위에 대한 비판으로도 욕이 사용된다. 욕해야 할 때 적절한 욕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기도 하며, 역설적이지만 욕이 있으므로 행동을 조심하고 삼가게 된다.

“앉아서 오줌 깔기는 것들이란”, “여자와 바가지는 나돌면 깨진다”, “불여시(불여우) 같은 년, 요망한 년”과 같이 여성 차별적인 욕, “뙤놈 같이”, “쪽발이 같은 놈”처럼 다른 나라 사람을 업신여기는 욕, “병신 꼴값하고 있네”, “지랄하고 자빠졌다”와 같이 신체적 정신적 결함에 대한 욕도 있다.

현재의 정상적 모습을 ‘병신’, ‘장애’ 등으로 표현해 나, 우리와 상대의 차이점을 부각해 상대를 배격하고 배척한다. 이처럼 꾸지람과 채찍욕은 욕먹을 집단에 속하지 않기 위해, 욕 얻어먹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게 한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규범, 가치에 욕을 안김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윤리적 면을 강조하고 있다.


욕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

욕은 특정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인간의 본성이 내재해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인간은 배설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존재이다. 특별히 욕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감정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근본 욕구인 배설의 욕구와 관련된다. 특히 성과 관련된 욕은 인간의 성적 욕구의 발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성은 부정시되고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성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표출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성적인 욕구를 성적인 욕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욕은 남녀의 성·성기 그리고 성행위에 자주 달라붙게 된다. 이것은 욕이 쌍소리를 겸할 때, 리비도(libido)의 양만큼 표출된다.

리비도란, 프로이트(Freud)에 따르면, 성 본능에 내재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말한다. 성을 천대하고 몰아붙이는 역작용으로 억압된 성 충동이 욕으로 표출된다.

욕에서 성이 더러운 것으로 의식돼 있다는 점에서 똥·오줌·침 등이 성과 한 묶음이 될 수 있다. “똥이나 먹어라!”, “오줌에 저릴라”, “침을 뱉을 놈” 등이 이에 속하거니와 배설의 쾌감과 욕하는 행위의 쾌감 사이에 관련이 있다. 그런 뜻에서 욕은 언어에 의한 배설 행위요 배변 행위이다.

인간은 생리적으로 배설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배설 후에는 반드시 욕구가 생겨나며,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게 된다. 욕도 마찬가지로 배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후련함, 통쾌함을 얻으며 자신을 새롭게 정화하게 된다.

둘째, 인간은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적대적 관계에서 극도의 분노 상태가 되었을 때 해소 방안으로 언어적 공격 행위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욕이다.

“아작아작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머리통을 박살낼”, “눈깔을 빼버릴라” 등의 악담과 저주의 쌍욕에는 특히 인간적 공격적 파괴적 충동 본성이 잘 표출돼 있다. 이는 인간이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욕설에 담긴 자기방어적인 본능

셋째, 인간은 방어적 존재이다. 욕에는 자기를 방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돼 있다. “병신 꼴값하고 있네”, “지랄하고 자빠졌다”와 같이 상대방에 대해 욕을 할 때 실제로 상대방이 병신이며, 지랄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 즉 ‘스티그마(stigma)’에 멸시와 모욕을 안기는 심리는 자신의 결함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잘못하고도 남에게 욕을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려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욕의 밑바탕에는 크게 분노, 증오·미움, 질책, 질투, 실망, 슬픔, 공포·두려움 등이 내포돼 있다. 이 중에서 공포와 두려움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요소보다는 자기 방어적 요소가 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위협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보호막을 친다. 또 상대방에게 욕을 듣거나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그에 대한 저항의 방법으로도 종종 욕을 한다. 상대방이 먼저 욕을 퍼붓는다면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을 사람은 없다. 싸움의 시작단계에서 “야, 이 ㅆㅂ놈아”라고 하면 “왜 이 ㅆㅂ놈아”라고 받아치는 것이 욕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인간은 성적 존재이다. 성을 표현하는 욕이든지, 아니면 성을 금기시하는 욕이든지 간에 욕에 성적인 표현이 많은 이유는 결국 인간은 성적인 존재임을 의미한다.

욕 가운데 가장 많이 응용·변형되고, 기본이 되며, 널리 사용되는 것이 ‘좆(남자의 성기)’과 ‘씹(여자의 성기, 성교)’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욕은 성을 소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욕은 남녀의 성기와 그들 사이 성행위의 모든 것을 즐겨 소재로 삼는다. 성에 관한 한 욕거리가 못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과 성행위는 온통 욕으로 얼룩져 있고 웃음거리로 뒤범벅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성은 자유이자 억압이고 쾌락이자 죄악이었기 때문이다. 탐닉하지 않을 수 없는 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피해의식마저 느끼고 혐오감이 작용해서 사람들은 성을 욕지거리의 앞장에 세웠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에 관한 욕설이 많이 있으나, 특히 한국어에 성에 대한 욕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려왔던 유교사상과도 관련이 있다.

유교에서는 성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성적 욕망을 통제할 것을 강요한다. 성행위를 ‘붙었다’느니 ‘붙어먹었다’, ‘배를 맞추다’느니 할 때는 경멸감이나 혐오감이 포함돼 있으며, 수치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과 성행위는 “더러운 짓!”, “짐승만도 못한 짓!”, “개 같으니라고”처럼 추잡함과 짐승스런 것의 극단으로서 욕을 바가지로 뒤집어썼다.

다섯째, 인간은 유희적 존재이다. 욕이 자주 또 널리 쓰이는 것은 언제나, 거기에 ‘말의 재미’가 수반돼 있기 때문이다. 말을 새롭고 재미있게 바꾸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언어는 뜻을 전달하는 사회적 약속을 넘어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며 갖고 노는 유희의 수단이다.

과거엔 우스개 노랫말 형식을 빌렸지만, 요즘엔 오락 프로그램과 인터넷 덕분에 모든 사람이 언어를 반죽해 창조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성장세대에게 욕과 더불어 신조어, 외계어의 창작, 유포는 새로운 일탈의 경험이자 한글의 체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포스트모던한 행위’이다. 은어나 유행하는 욕설을 사용하는 것은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생각되지만, 성장세대의 입장에서는 또래와의 소속감의 확인인 동시에 기성세대의 구속과 전통적 권위에 대한 반항이고, 한편으로는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기도 하다.


욕은 인간 감정을 정화해

아무래도 욕은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욕은 인간 본성의 적나라한 표현이며, 삶과 문화의 반영이다. 그러므로 욕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욕의 교육인간학적 기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욕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를 정화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준다. 욕을 통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인간은 감정을 정화한다. 현대병의 모든 시초는 복잡해져 가는 사회 속을 헤쳐나가면서 받는 스트레스라 할 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이 스트레스는 풀어버려야 할 것이 돼버렸다. 욕은 이런 스트레스에 대해 어느 정도 완충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흔히 ‘속 시원하게 (욕)한판’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욕이 마음에 상처받은 자의 자기 치유 행위로서 기능 하기 때문이다.

둘째, 욕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욕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하는 역공(逆攻)의 언어이다. 그 가해가 부정하고 왜곡된 것일 때 욕의 역공성은 더 한층 증폭될 수 있다. 때로는 이론적인 글보다는 욕 한마디가 부당한 세력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욕은 부당한, 번지수가 틀린 도전에 대한 응징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욕은 역설적인 윤리요, 기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욕은 인간관계 형성에 기여하며, 친밀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전주의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이 대표적인 예다. 1970년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전주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에 가서 국밥을 시켜 먹는데 욕쟁이 할머니가 “이놈아,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인 줄 알겠다. 옜다, 계란 하나 더 처먹어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미움과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 넘쳐나는 욕이라 하겠다.


욕의 집단결속기능



욕의 밑바탕에는 크게 분노, 증오·미움, 질책 등이 내포돼 있다. 이 중에서 공포와 두려움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 요소보다는 자기 방어적 요소가 짙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전쟁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욕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대부분의 욕은 노여움을 동반하여 인간관계를 악화시킨다. 하지만 호남에서 “이 잡것”, 경상도에서 “야 이 문둥아”, “야, 이 새끼야” 등 이런 농담관계의 욕은 인간관계의 친밀성을 높여주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이 문디 같은 자식. 잘살고 있었나? 반갑데이”와 같은 욕을 던진다면 서먹해질 수 있는 만남이 단번에 이전 막역한 시절의 분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쌍욕, 악담욕과는 달리 애칭욕과 익살욕은 강한 애정과 친근감의 표시, 기분 전환, 재미 추구, 긴장감 해소 등의 생동적인 역할을 하며, 인간관계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요즘 아이들이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인한 가정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의 소원함을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욕을 쉽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째, 욕은 자기가 속한 집단을 결속하는 기능이 있다. 인간은 다른 집단에 대한 불만이나 차이점을 욕을 통해 과장함으로써 자기가 속한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려고 한다. 이와 같은 욕은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하고 집단 간 협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집단에 대한 결속력을 높이기도 한다.

다섯째, 욕은 인간 감정을 효과적이면서도 풍부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부정적 인물에 대한 증오, 경멸, 풍자, 친근해 흉허물이 없음을 나타내거나 사랑스러운 감정을 전달하는 등, 욕 자체로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 친근한 사이에 우스개로 쓰일 수도 있고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친밀성, 귀염성 등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지도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욕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욕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며,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욕을 많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욕할 만한 상황에서는 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욕을 안 하는 것보다 욕을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유익할 때도 있다.

다만 해서는 안 될 욕, 예를 들면 신체적인 결함을 담은 욕, 상스런 욕, 악질적인 욕,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욕,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욕, 특정인을 비방하는 욕 등은 가급적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욕하는 성장세대에 대한 이해 필요

이와 함께, 욕하는 성장세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욕을 무척 많이 사용한다. 최근 한국교총과 EBS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75초에 한 번씩 욕설을 하고, 1시간에 49회의 욕설을 한 것으로 나타났으며(《조선일보》10월3일자), 올 초 <여성가족부 보고서>에서도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성장세대가 욕을 많이 하는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욕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고 무조건 꾸중하고 질책하는 것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성장세대의 행위 대부분은 기성세대의 행동에 기인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성장세대의 욕이 급증한 것은 기성세대가 제공한 디지털미디어, TV, 영화, 게임, 대중가요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가 성장세대의 언어습관을 오염시켜 놓고 이제 와서는 욕하는 청소년들만을 나무라는 것은 어른들의 횡포요 무책임한 태도다.


교육부 ‘욕 대책’은 정말 욕나오게 하는 대책

일반적으로 욕은 약자의 무기임과 동시에 자기 위안의 수단이 된다. 특히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와 권위적인 한국사회에서 약자인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억눌린 감정을 욕설로나마 발산함으로써 울분과 분노를 달래고 삭일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욕은 성장세대의 억압된 정서와 감정을 해소하는 해방구로 기능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세대들이 욕을 달고 사는 것은 그들의 삶이, 현실이 욕 나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욕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욕망의 늪에서 성장세대를 끄집어내 줘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교육 당국이 발표한 ‘욕 대책’ 중에서 ‘욕을 많이 하는 학생들의 실태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여 상급학교 진학 때 불이익을 주겠다’는 정책은 성급하고 즉흥적인 것으로 재고(再考)돼야 한다.

욕을 강제로 금지하겠다는 정책보다는 욕하는 원인과 이유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 근본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욕 대책’은 오히려 성장세대의 입에서 더 많은 욕이 나오게 할 뿐이다.⊙

<이 글은 동아대 《석당논총》에 강기수·이점식이 공동 게재한 글을 수정·재구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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