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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記] 이승복과 평창동계평화올림픽

marineset 2023. 5. 28. 01:38
[취재記] 이승복과 평창동계평화올림픽

"소년 영웅 이승복의 저항 · 항거의 안보정신이 평창동계평화올림픽으로 승화, 세계적 평화의 기념관으로 우뚝 서지기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5-12-15 오후 4:16:11


눈(雪)의 고장이자 2018년 세계 동계올림픽 개최현장인 강원도 평창을 찾았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우리나라 스키의 메카로 유명했던 용평면,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어릴 적 노래가사로 평창-용평을 먼저 배운 속사리 계방산 자락 운두령이다. 2011년 12월9일 이후 2015년 12월9일이었으니 정확히 3년만인 것 같다. 아마 2006년 겨울로 기억된 첫 만남으로부터 회사의 속사정으로 만나지 못하다 찾게 되었으니 그래도 적지 않은 만남인 것 같다.

12월9일은 4~50대 이후라면 대부분 기억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북에서 남파된 무장공비의 손에 무참히 입이 찢기고 칼로 난자돼 학살된 당시 9살,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 1학년이던 故 이승복군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그가 사랑하던 엄마와 남동생, 여동생이 잠들어 있는 계방산 묘역에서 열렸다. 묘역에는 새로운 가족도 함께였다.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비명에 잃고 안타깝도록 지난(至難)한 삶을 살아오다 지난해 8월 죽도록 그립고 보고 싶은 부인과 아들 딸 곁에 영원히 함께 잠든 아버지 故 이석우님도 함께 였다.

이 날 추모식은 매년 10월 평창군 교육지원청이 대관령에 개관(1975.10.14)했던 이승복 반공관이 평창군으로 이전 개관(1982.10.26)한 날을 기점으로 하는 추모식과는 별도로 (예)영관장교연합회가 그의 기일(忌日)을 맞아 12월9일 개최해 옴에 따라 기자도 동행한 것이다. 구태여 오랜 시간의 흐름도 아니었건만 그러나 3년은 긴 시간이었나 보다. 매년 서울에서 이승복 추모제에 참석하는 (예)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은 100명이 훨씬 넘어 항상 버스3대에 나눠 타 참석하곤 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차량 1대에 참석자도 40여명이었다.

참석자들의 연령도 6·25한국전쟁참전 유공자로부터 월남전 참전 회원, 거기다 1968년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 소탕작전 등 숱한 대간첩작전에 직접 참가한 역전의 노병(老兵)들이었다. 세월은 이들 노병들의 발걸음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이승복 군의 묘역이 위치한 산비탈을 오를 때는 호흡도 거칠어지고 발걸음 또한 더디고 늦어지기도 했지만 눈빛만은 눈 덮인 산야를 굴하지 않고 호령호령하던 그 기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1968년 12월9일 저녁 동네일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화스럽게 바느질하던 엄마와 건넌방에서 동생들과 숙제를 하고 있던 아홉 살 이승복 군은 갑자기 들이닥쳐 먹을 것을 내 놓으라 윽박지르며 공산당 선전을 늘어놓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잔당들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외쳤다. 이에 공비(共匪)들은 무자비하게 승복군의 입을 찢고 돌로 치고 칼로 찔러 학살만행을 자행했다.

좌파정권과 사이비 언론의 조작, 사라진 이승복

이승복 학살만행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북한공산주의·공산당에 대한 잔학상에 다시금 몸서리치며 대관령에 그의 반공기념관이 개관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관련 내용수록이, 학교에는 동상 건립과 반공웅변대회가 전국적인 주요행사로 개최돼 첨예한 분단현실에서 전 국민에 대한 안보의식 강화의 일대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좌파정권이 들어선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1992년부터 98년까지 당시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는 사이비 언론인과 이를 동조하는 종북좌파 세력들에 의해 이승복 사건은 큰 흠집을 남기면서 1997년 교과서에서도 완전히 사라지고, 동상은 아예 파 뭉개지거나 학교 뒤편 자재더미에 뒤섞인 채 웅변대회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2006년 11월24일 형사재판과 2009년 2월12일 민사재판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발언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불순세력들은 법의 철퇴를 맞았고 잊혀져가던, 잃어버릴 뻔 했던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는 역사적 사건의 실체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故이승복 사건은 한 일가족의 비극사가 아니다. 한 시대 한민족 전체의 비극과 아픔을 대변하는 축소판이기도 하다. 평생의 악몽(惡夢)으로 점철됐을 지난(至難)했던 그 순간까지 비명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아버지 故이학구씨와 마찬가지로 1968년 12월9일 공비들에 의해 수십군데 칼로 난자돼 거름더비에 내던져졌다 발견돼 구사일생(九死一生) 살아난 형 학구씨와 또 다른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도 국가안보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렸던 역전의 용사들, 현역시절 영관장교로 군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다 전역한 뒤에도 ‘안보’에 관한한 한목소리를 내며 오직 국가안위를 염려해오던 (예)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 예, 육군대령)가 이 문제에 나섰다. 1999년 31주기부터 기일(忌日)추모제를 지내며 ‘이승복 사건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권오강 회장을 비롯한 단체 회원들은 강원도 평창 이승복 기념관에서는 물론 서울의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시청 앞 지하도 등 거리곳곳에서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에 계절과 시간, 몸을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를 위시한 교육부와 국방부 등 정부, 국회, 학교 및 교육기관, 지방의 관공서와 산하기관단체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문서와 책자를 직접 제작해 나눠주며 이의 중요성 부각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이승복, 그의 외침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12월9일 추모식에 참석한 박용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원도 부의장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승복 역사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 중심에 영관장교연합회 어르신들의 노고가 있었다. 여러 어르신들의 노력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부의장은 “지난 10월 이곳 이승복기념관에서 이승복을 기념하는 전국 학생 웅변대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상을 제정해 열기가 아주 뜨겁게 진행됐다. 내년부터는 더 크게 활성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렇게 준비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강원대학교와 민주평통이 공동으로 이승복 관련 세미나도 열 계획이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오는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연계한 평화운동 사업계획의 준비가 그것이었다. 이승복 사건의 복원을 위해 이승복으로 대표될 수 있는 반공, 안보 상징의 평창 관광지 이미지와 함께 평화를 되새기고 기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계하겠다는 발상이다.

“이승복기념관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이념과 맞물려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발전시켜 나가게 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실무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념관을 찾은 관광객은 12만6,000명이며, 올해는 지난 9월말까지 6만9,000여명이 찾는 데 그쳤다고 한다. 반공의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경우 한 해 60만 명이 찾는 강원도내 주요 관광명소였다는 사실과 견주면 허허로워질 뿐이다.

이 날 추모식에 이 지역을 관할하는 강릉보훈지청장이 참석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2015. 10.14) 이승복기념관이 국가지정현충시설물로 승격되었다. 괄목할만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승복 추모제를 취재하면서 기자가 느낀점은 강원도 교육청은 물론 지역 교육지원청에서도 가장 홀대받는 곳이 이 기념관이라는 것이었다. 기념관장의 직급도, 직원수도, 예산배정도 그랬다. 그런 점에서 지금 당장 어떤 현저한 변화가 일기는 어렵겠지만 국가현충시설물 지정이나 대통령상이 제정된 전국 웅변대회개최, 지역 내 통일기관단체와 학계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가슴 뜨거워짐을 접하는 한편, 최근 확정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집필이 머지않아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도 수록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게 된다.

“이제 조금씩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감사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앞장서서 이끌어 주신 (예)영관장교연합회 어르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날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에서 버스 출발 직전 차량에 올라 탑승한 연로한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이승복 군의 친 형수님께서 한 감사의 인사말이었다.

내년 48주기 추모제 취재차 방문 시에는 그간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이 얼마나 변화발전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된다. 더불어 네덜란드의 안네 기념관이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는 세계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강원도 평창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함축되는 소년 영웅 이승복의 저항 · 항거정신을 어떻게 접목, 승화시킬지 벌써부터 가슴 설레게 된다.(konas)

이현오(코나스 편집장. holeekva@hanmail.net)
 
 
2015.12.15 | 코나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이념과 맞물려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발전시켜 나가게 하기 위해 관계기... 있듯이 올해(2015. 10.14) 이승복기념관이 국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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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명]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사건은 허위가 아닌 진실로 밝혀졌다.


    글번호 4184, (조회 : 610) IP 번호

    글쓴이 우익청년모임 날 짜 2009/02/14 (03:48)


    [성명]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사건은 허위가 아닌 진실로 밝혀졌다.

    1968년 10월 30일 3차에 걸쳐 울진삼척지구 해상으로 침투한 120명의 무장공비중 잔당 5명은 대한민국 군,경찰,예비군의 추격을 피해 북으로 도주 하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이승복군의 집에 침입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면 그들에게 동조해 줄것을 요구 하였으나 이승복군은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자 순신간에 가족을 살해하였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의 총칼아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절규하며 죽어간 반공정신의 귀감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친북 좌파세력들은 진실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허위 조작되었다고 유포하였다. 그 초기인 1992년 학교에 있는 이승복군 동상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교과서에서도 이승복군 관련 내용은 삭제되기 시작했다.

    특히 조작설이 유포된지 5년후인 1997년부터는 이승복군 관련내용이 교과서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처럼 친북 좌파세력들은 목적달성을 위해 9세 소년의 죽음까지도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김주언 前 언론개혁 시민연대(언개련) 사무총장은 조선일보의 1968년 '이승복 어린이 일가족 학살' 보도에 대해 현장 취재도 거치지 않은 '작문' 수준의 허위보도라고 주장하며 '오보 전시회'를 열려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조선일보사가 김 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12일 확정했다.

    판결문에서 "기사에 보도된 이승복의 말은 원고가 만들어낸 것으로서 거짓이라는 취지의 피고의 적시사실은 허위라고 볼 수밖에 없고, 피고가 이를 진실로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옳다"고 밝혔다.

    1심 판결문 에서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어린아이와 일가족을 학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승복 사건이 의혹조차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 판결문 에서는 "30여년을 이승복 사건이 진실로 기정사실화돼 있는 상황에서 그 보도가 허위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전시회를 열 때는 신빙성이 높은 자료를 바탕으로 신중히 의혹을 제기했어야 하지만 피고는 사건의 진실 여부에 대해 특별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며 "이승복 사건 당시와 현재의 대북관계 인식변화 등을 참작해 손해배상액을 500만원으로 정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의 공정하고 정당한 판결에 우리는 환영과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오보 전시회'를 열 당시 조아세와 안티조선은 전국 각지에서 조선일보 안보기운동등을 하였다. 이에 대한 전단도 배포를 하였다.

    조아세와 안티조선은 조선일보에 사과를 하였야 한다. 또한 이승복군의 사회적 국민적으로 명예를 회복을 시켜야 한다. 또한 이승복군 동상과 교과서에서도 이승복군 관련 내용을 모두 복원을 하였야 한다. 이승복군 사건의 사례는 친북 좌파의 역사왜곡 사례중 빙상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사회 전반에 뿌리깊이 침투해 있는 친북 좌익세력을 발본색원하여 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울러 친북좌파에 의해 찢기고 구부러진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아 국가정체성을 정립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기틀을 바로 세워야 한다.

    2009년 2월 14일
    우익청년모임(미래를 위한 청년연합)


  •  badoc 2016/03/19 10:43 # 수정 삭제 답글
  • 단체

    언론개혁시민연대 http://www.mediareform.co.kr/

    한총련 비호·‘反共소년’ 이승복 부정·천안함 폭침 보도 비방

    - 이념성향 - http://factfinding.net/client/keywords/view2.asp?Idx=31

    - 단체 설명 -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개련)는 좌파적 시각에서 방송, 신문 등의 언론보도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소위 보수언론을 비난해온 단체이다.

    국보법 폐지 주장·한총련 비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사를 국민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 특히 反共(반공)소년 이승복 군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보도한 〈조선일보〉를 비난하며 誤報(오보)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언개련은 2004년 9월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언론계 선언’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개련 김영호 前 공동대표는 2004년 9월1일 “걸핏하면 되살아나는 매카시즘의 망령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며 “국보법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시대 유물이며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국보법 폐지운동에 언론인들이 앞장서겠다”고 주장했다(발언출처: 2004년 9월1일字 〈오마이뉴스〉 보도).

    언개련은 2003년 8월14일 ‘한총련 학생들의 美 스트라이커 훈련장 진입시위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에서 “우리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은 그들의 선배로서 한총련 후배들에게 ‘그들의 용기와 직접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같은 달 7일 한총련 소속 12명이 경기도 美 8군 종합사격장 난입에 대한 성명이었다. 美軍 훈련장에 난입해 장갑차를 점거하고 성조기를 불태운 한총련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고 성명한 것이다. 언개련은 같은 성명에서 “한총련 학생들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목숨을 잃게 될 가능성마저 있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한반도의 반전평화를 위해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한총련을 비호했다(발언출처: 2003년 8월14일字 〈통일뉴스〉 보도).

    “‘북한 관련설’은 조선·중앙·동아 찌라시가…”

    단체는 2010년 4월5일 ‘미디어행동(언개련이 소속되어 있었음)’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천안함 爆沈(폭침)에 따른 정부대응과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와 군과 언론은 천안호 사건을 사태로 만들어 놨다. 납득할 수 없는 사후 대처, 은폐와 왜곡, 거짓 해명과 알리바이 짜깁기로 가족들과 시민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놨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북한 관련설’은 조선·중앙·동아 찌라시와 방송 3사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유포되었다”며 “조선·중앙·동아는 국방장관과 군 관계자의 검증되지 않은 코멘트에 기대 결정적인 증거도 없이 ‘북 관련설’을 유포해왔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폭침의 主犯(주범)인 북한정권엔 침묵하고 우리정부와 軍, 언론을 더 비난한 것이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거짓이라고 억지

    언개련은 1998년 8~9월, 서울시청 앞 도로와 부산역 광장에서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 때 이승복 소년이 무장공비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말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사실이 아니라며 ‘誤報(오보)전시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승복 기사’를 확대해 ‘반공구호 앞엔 진실도 필요 없나? 나는 거짓보도가 싫어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 밑에는 “기사를 쓴 기자는 현장에 가지 않았고 현장 생존자를 만나지도 않았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는 설명을 달아 놓았다. 당시 이승복 피살사건을 취재·보도했던 〈조선일보〉는 언개련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법원에 고소했다.

    2007년 9월5일,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조용구)는 〈조선일보〉가 김주언(前 언개련 사무총장)과 김종배(前 미디어오늘 편집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주언은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오보 전시회의 이승복 사건 설명을 종합하면 일반인들에게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 〈조선일보〉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그릇된) 인식을 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설명은 진실에 反(반)하고 김주언 씨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도 없으니 위법하다”고 밝혔다. 2009년 2월12일,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조선일보〉가 김주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 씨는 〈조선일보〉에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대법원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군의 마지막 절규가 사실이란 것과 언개련의 주장이 虛僞(허위)임을 확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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