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audio-visual

현대미술의 개념(7)

marineset 2025. 9. 25. 04:03

현대미술의 개념(7)

 

 

분홍양파들이 있는 정물 , 앙리마티스 , 1906년

그는 아수파들 가운데 이렇듯 새로운 영향들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몇 해 뒤에 오통 프리에스(Ochon Fricz)가 야수파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정의했는데, 이 아이디어는 마티스가 노렸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프리에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야수파란 단순한 태도나 제스처가 아니라 논리적인 발전, 즉 우리가 전통의 범주들 안에 아직 머물러 있을지라도 우리의 의지를 그림 위에 표현할 수 있는 그러한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프리에스 같은 몇몇 화가는 바로 이러한 전통에의 의존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지만, 반대로 마티스 그리고 더 넓게는 드랭과 블라맹크 등은 전통적인 주제에 입각해서 즉흥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고, 미리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에 의해서 재구성할 수가 있었다.

 

이 세 명의 화가들을 그 뒤에 등장하는 야수파 화가들 (당시까지 브라크는 자기의 야수파' 작품들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과 구별시키는 간극을 우리로 하여금 의식하게 해주는 것은 아마도 전통을 동화시키는 정도인 것 같다. 보셀르(Vauxcelles) 작은 야수 (Raures)라고 명칭을 붙인 이 나머지 화가들의 작품을 도외시하는 일은 물론 오류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빅벤, 앙드레 드랭 1906년 79/98cm 트루아 현대미술관

 

 

 

 

 

 

 

 

 

 

 

 

1905년부터 1907년까지의 당시에는 마르케(Marquct), 발타(Valcac) 그리고 반 동겐(Van Dongen) 등이 그린 아주 훌륭한 풍경화와 초상화들이 얼마간 있었으나 거기엔 항상 다음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즉, 야수파의 테마로서 인식되어 있던, 강렬하고 생동하는 색채는 늘 효과적은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빈번히 그림 속에 잠재되어 있는 19세기풍의 전형적 풍경이나 인물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가장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의 새로운 회화기법의 채택은 상상력과 지각력의 결핍을 보충할 만큼 언제나 급진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1905년 이후의 많은<삽화(I'Illustration)>의 흑백 복사판도 망갱(Manguin)과 퓌이의 두 풍경화들이 루오, 마티스, 드랭의 작품들과 견주어볼 때 얼마나 복고적인가를 보여준다. 모두가 함께 진보했고, 많은 이들에겐 그것이 벌써 너무 진보적인 것이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마티스가 갈구하면 근본적인 이념과 목표는 다른 모두의 이해 범주에서 당연히 벗어난 것이었다.

 

1906년은 야수파에게 있어서는 대승리의 해였다. 야수파 운동은 앙데팡당전에서 절정에 달했고, 전처럼 마티스는 앙데팡당에서의 전시회를 석권했다. 그는 <생의 환희> 한 점만을 출품했는데, 이것은 1005년의 그의 작품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고해 보건대, 우리들은 이 작품의 중요성을 마티스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것에 정면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피카소가 그 이듬해에 완성한 작품 아비뇽 거리의 아가씨들 (Demoiselles d'Avignon)과 관련시켜서만 보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는 마티스의 한가지 면모는 100년대와 70년대의 문학적 전통에 대한 그의 친필성이다. 마치 <화사함, 고요함과 쾌락>이 보들레르의 시에서부터 나왔듯이 <생의 환희>역시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쾌락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템즈강의 다리 , 앙드레드랭, 1906년 80/100cm 아농시아드미술관

마티스는 상징주의 시대의 산물이며, 이것은 결국 그가 성장해 온 시기였으며, 우리는 그의 초기의 경력 중에 자주 이러한 근원들을 상기하게 된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것은, 그가 아주 급진적이고도 긍정적인 회화에 대한 이념(idea)을 규명하기위해서 언제라도 빈혈증으로 흔들릴 것 같은 전통을 어떻게 구사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티스가 이룩한 업적을 감상하려면 동시대에 배출된 모리스 드리 (Maurice Denis)의 목련라는 주제와 비교해기만 하면 된다.

 

물론 피카소는 아플리네르, 막스 자콥 (Max jacobl,앙드레 살묭 (Andre Salmon) 등이 이끄는 전혀 새로운 문학 그룹의 일원이었고 위의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상징주의 자들과 이러한 경향을 함께 한 일이 없었다.

 

<생의 환회>는 적어도 1905년 당시 작품들의관점으로 불 때, 명백히 야수파 계열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야수파가 무엇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 방법을 가리키는 한 걸음 초월한 작품이었다. 다른 아수파 화가들과는 다르게, 마티스가 이것을 하나의 문제로 간주했는가는 의문이지만 이 작품은 아름답게 통제된 그림이어서 모든 선과 모든 공간이 고요함과 평온함의 표현에 귀결되어 있고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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