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Rok marines 96

못생긴 해병 의장대 사열, 장개석 총통을 맞이하다

못생긴 해병 의장대 사열, 장개석 총통을 맞이하다 장개석 총통 진해 방문 [1]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이승만-장제스 회담 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다. 특별한 경우란 바로 장제스(蔣介石) 자유중국(타이완) 총통과 이대통령의 진해회담이었다. 자유중국 국부였던 장 총통은 1949년 당시 총통 자리에서 물러나 국민당 총재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총통이라 불렀고, 이대통령도 그렇게 예우하기를 원했다. 초창기 해군 외교 업무까지 담당 장 총통 자신이 국빈대우를 꺼려 서울을 사양해 회담장..

[월남참전50주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월남전 참전의 빛과 그림자

한국군파병 PDF약사 [월남참전50주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월남전 참전의 빛과 그림자"내 손으로 묻은 전우들"…아직도 생생한 전장의 기억'한강의 기적', 한국 경제성장 발판 베트남전쟁 특수'폐지' 줍는 '국가 유공자'...국가는 우릴 버렸다등록: 2015-08-23 07:00 수정: 2015-08-23 08:29(서울=포커스 뉴스)올해로 월남전 참전 50주년을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전쟁에 전투병력이 투입된 지 50년이 지났다.우리군의 첫 파병은 51년 전인 1964년 9월이었지만 이들은 제1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교관단으로 구성된 140명의 소규모 의료지원단이었다.다음해인 1965년 3월 베트남 지안(Di An)에 도착한 2000여명의 ‘비둘기부대’도 역시 공병부대로 도로와 교량을 ..

海兵隊의創設과草創期 役割

海兵隊의創設과草創期 役割 1. 海兵隊의創設과草創期 役割 가. 창설배경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와 순천 지구에서는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14 연대내에 침투 조직되어 있던 김지회(중위), 지창수(상사), 홍순석(중위) 등 3명의 주모자와 40여명의 남로당 프락치들에 의해 주도된 반란 • 폭동사건이 발생하여 그 두 지역에서 군• 경을 비롯한 약 2000여명의 관민이 살해당하는 끔찍한 비극이 초 래된 바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은 해방 후의 정치적 사회적인 혼란을 반증하는 불행한 사건이긴 했지마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창설을 보게 된 것이 곧 대한민국의 해병대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육군에서는 그 당시 광주지구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여단과 제5 여단을 통합한 전투사령..

별난 병역이행 가족 신청서

별난 병역이행 가족 신청서 R별난 병역이행 가족 신청서신청자 인적사항성명 이xx주소 경기도 오산시 양산로일반전화 (031)휴대전화 (010E-mail[별난 병역이행 내용]신청인 본인 이xx는 1970년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13개월간 월남전에 참전(유공자 등록번호 21-1305571)후 연평도에서 잔여기간을 복무하고 전역하였습니다. 본인의 장남 이상윤(해병대1사단 복무)과 차남 이현승(해병대사령부 복무)도 대를 이어 해병대를 명예롭게 전역하였습니다.특히 장남 이상윤과 조카 백성민(해병대2사단 복무)은 동갑으로서 미국 유학중(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의기투합, 함께 귀국하여 해병대에 지원하고 같은 날 입대하여 통역병 교육도 함께 수료하였으며 키리졸브와 같은 한미합동훈련에 차출되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만기 전..

베트남 파병으로 韓國이 벌어들인 '50억 달러'

베트남 파병으로 韓國이 벌어들인 '50억 달러' 베트남 派兵으로 美國은 사상처음으로 한국 정부를 외교의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조 등으로 끌려 다니던 弱小國 한국이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의 눈치를 보게 만든 외교상의 쾌거였다. 日本人들은 韓日회담을 통해 日本이 韓國에 제공한 對日청구자금 8억달러(경제협력자금 포함)가 한국 경제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물론 일본의 원조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한국경제를 만든 기초는 누가 뭐래도 朴正熙 대통령의 베트남 派兵이었다. 베트남 派兵은 朴대통령이 정치와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美國이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이는 관계자 증언을 통해서도 나왔지만 베트남전 관련 외교 문서..

주월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參戰略史

주월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參戰略史 파병과 주요작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귀신잡는 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등 해병대와 관련된 표어(slogan) 한 두마디를 모르는 성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해병대의 특성과 기질, 나아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는 상징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표어들이 6·25전쟁 등 위기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으면서 만ㄴ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표어는 좀 더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바로 44년전 오늘 즉, 1967년 2월 15일 아침 베트남의 짜빈동에서 한국해병대 제2여단 제11중대의 전투현장을 둘러 본 외신기자들이 붙여준 애칭이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주둔지역 1965년 10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