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Rok marines 90

베트남 파병으로 韓國이 벌어들인 '50억 달러'

베트남 파병으로 韓國이 벌어들인 '50억 달러' 베트남 派兵으로 美國은 사상처음으로 한국 정부를 외교의 동반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조 등으로 끌려 다니던 弱小國 한국이 베트남 파병을 통해 미국 정부가 오히려 한국의 눈치를 보게 만든 외교상의 쾌거였다. 日本人들은 韓日회담을 통해 日本이 韓國에 제공한 對日청구자금 8억달러(경제협력자금 포함)가 한국 경제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물론 일본의 원조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의 한국경제를 만든 기초는 누가 뭐래도 朴正熙 대통령의 베트남 派兵이었다. 베트남 派兵은 朴대통령이 정치와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美國이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이는 관계자 증언을 통해서도 나왔지만 베트남전 관련 외교 문서..

주월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參戰略史

주월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參戰略史 파병과 주요작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귀신잡는 해병대', '신화를 남긴 해병대'등 해병대와 관련된 표어(slogan) 한 두마디를 모르는 성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해병대의 특성과 기질, 나아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는 상징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표어들이 6·25전쟁 등 위기상황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으면서 만ㄴ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표어는 좀 더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바로 44년전 오늘 즉, 1967년 2월 15일 아침 베트남의 짜빈동에서 한국해병대 제2여단 제11중대의 전투현장을 둘러 본 외신기자들이 붙여준 애칭이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주둔지역 1965년 10월 9일..

ANGLICO**미 해병대 항공함포 연락중대

ANGLICO**미 해병대 항공함포 연락중대 special operations forces » usmc special operations » Air Naval Gunfire Liaison Company ANGLICO | Air Naval Gunfire Liaison Company**항공함포 연락중대 Air Naval Gunfire Liaison Company (ANGLICO) are an elite United States Marines Corps (USMC) unit tasked with calling in air strikes and artillery fires in support of their attached formation. ANGLICO - Role The 'Liaison' part of t..

개병대

개병대 原文 대한민국 해병대 및 그 구성원들을 비하하는 별명. 어원은 한국어에서 특정 대상을 멸시,비하할 때 자주 붙이는 접두어 "개(犬, dog)"와 "해병대"의 합성어. 이 별명의 어원에 대해서, 한국전쟁 도중 해병대가 공을 세운데 흡족해 한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해병대가 문을 연다고 해서 열 개(開)자를 붙여서 개병대라고 지어준 데에서 유래했다는, 즉 원래 좋은 뜻의 별명이었다는 황당한 카더라가 요즘 해병들 사이에서 퍼져 있다. 그리고 열 개자가 아니라 '승전가 개'(凱)자라는 버전의 카더라도 있다. 실화가 아닌 허구 소설들이다 보니 이처럼 카더라 버전도 여러가지가 있다. 물론 이런 썰들은 해병대 특유의 아무 근거 없는 카더라에 불과한 얘기들로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필 휘..

한국 해병대 7대 전투

한국 해병대 7대 전투 1. 도솔산 지구 전투(’51. 6. 2∼6. 20)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춘계 공세를 격퇴한 직후‚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 요충지 도솔산(▲1‚148)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1단계 작전(1951. 6. 4 ∼ 6. 12)시 공격 목표 ∼1’에서 목표 ‘16’까지 점령한 뒤 캔사스선으로 진출하였고‚ 제2단계 작전(1951. 6. 13 ∼ 6. 24)시 공격 목표 ‘17’에서 목표 ‘24’까지 점령하고 버지선까지 진출하여‚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제5군단 제12사단과 제32사단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써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전투이다..

역시 `무적 해병'이다

역시 `무적 해병'이다 역시 `무적 해병'이다 / 2010.08.03 이형균 인하대 객원교수·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얼마 전 강원도 홍천에 있는 과학전투훈련장(KCTC)에서 해병대가 치열한 전투 끝에 3참호 진입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7월 3일부터 3일간 진행된 전쟁체험훈련에서 해병1사단 71대대는 4시간 만에 대항군인 전갈대대의 완강한 저지를 뚫고 방어진지 1, 2, 3 참호를 차례로 점령했다. 이전에는 대다수 부대가 훈련 초기에 1참호도 점령하지 못하고 전갈대대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해병대 관계자는 “상륙작전 등을 통해 몸에 익힌 해병대만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과를 통해 우리의 해병이 세계 최강의 부대임이 입증됐고 다시 한번 ‘무적 해병’의 명예를 드높였다. 사..

서울 수복 태극기와 박정모

서울 수복 태극기와 박정모 서울 수복 태극기와 박정모 •박해현 논설위원 hhpark@chosun.com 1945년 2월 23일 일본 남쪽 화산섬 이오지마(硫黃島)의 수리바치산 정상에 미군 해병대원 6명이 거대한 성조기를 꽂았다. 미군이 6만1000 해병대원을 투입해 요충지 이오지마를 점령한 순간이었다. 미군 6800명, 일본군 2만명이 전사한 혈전 끝에 거둔 값진 승리였다. 해병대원들이 안간힘을 다해 깃발을 꽂는 사진은 곧바로 애국심의 상징이 됐다. 1945년 이오지마전투 기념우표에 이어 1995년 승전 50년 우표에 등장했다. ▶대한민국 국군도 태극기를 휘날리며 승리의 감격을 누린 상징적 순간이 있다. 1950년 9월 27일 오전 6시 10분 서울 탈환에 나선 해병대가 중앙청에서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

전방을 다녀오다.

전방을 다녀오다. 연휴를 맞아 오랫만에 친구들과 묻지마 여행을 떠났다. 환갑 안팎의 친구들인데도 함께 떠나는 여행은 서로에게 묘한 설레임을 안겨주었고 비록 며칠간의 자유임에도 우리에겐 편안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포천-연천-철원-화천-양구-춘천을 잇는 코스는 마치 전방순례의 여정이었다. 과거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었으나 지금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평생 처음 백마고지와 노동당사도 가 보았고 펀치볼, 도솔산 전적비도 다녀왔다. 도솔산 전적비를 찾았을때는 우리 해병대 선배들의 혼이 서려있음을 피부로 느끼며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국민 성금으로 건립된 평화의 댐은 그저 안보교육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던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번 순례여행에 찍은 사진들은 카메라 작동 실수로 모두 없어져..

양상훈 칼럼 [양상훈 칼럼] 백령·연평도의 우리 아들들을 생각한다

양상훈 칼럼 [양상훈 칼럼] 백령·연평도의 우리 아들들을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해 5도의 참호 속에서 그 앞바다의 고속정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젊음들이 있다 그들과 그 부모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3년 전인 1986년 7월의 어느 날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당시 서울대를 취재했던 필자는 여름방학을 맞아 DMZ(비무장지대) 순례에 나선 학생들을 따라나섰다. 그때 서울대는 화염병과 최루탄의 전쟁터였고, 서울대 교정 안팎에서 학생 분신자살이 속출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 때에 군사정권에 맞서던 학생들이 휴전선을 따라 걸어간다니 당연히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 순례의 마지막 코스가 백령도였다. 학생 214명을 태운 해군 수송선은 백령도로 직행하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서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