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문제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한 절의 住持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폭력과 살인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승단에 몸을 담은 한 사람으로서도 낯을 들 수가 없읍니다. 승단의 인사문제로 인해 온갖 추대를 보인 일 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이번 처럼 살인으로까지 몰고 간 적은 일 서기 없었던 일입니다.
새삼스레 制服의 悲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물론 어떤 집단에서든지 불미스런 물의를 일으킨 것은 극히 소수의 무리들이지 만,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막중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에서는 잘한 일은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잘못된 일은 그 실체보다 몇 갑절 크게 울려 퍼지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 의 淨化와 사회 정화의 소임이 주어진 종교집단의 경우는 그 메아 리가 더욱 클 수 밖에 없지요. 그만큼 일반의 기대와 歸依의 대상 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름마다 써 보내기로 한 이 글이 늦어진 연유도 여기에 있읍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염치도 체면도 없 었읍니다. 이것은 저 한 사람만의 심경이 아니고 수많은 佛子들의 공통된 심경일 줄 믿습니다•
제 집안일도 하나 건사하지 못한 주제에 누구를 항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읍니까. 그저 여러분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出家란 단순히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 아닙니다. 온갖 세속적인 모순과 갈등과 집착의 집에서 훨훨 미련없이 떨치고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고 적극적인 추구입니다. 똑같이 집에서 나은 사실을 가지고, 家出이라고도 하고 出家라고도 하는 것은 그 뜻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出家한 번으론 안돼
출가는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질 수 없읍니다. 몸뚱이만 살던 집 에서 빠져나온다고 해서 출가가 될 수는 없지요. 그 정신이 거듭 거듭 항상되고深化됨이 없으면, 괴어 있는 물처럼 부패하게 마련 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非埋와 갈등과 집착을 극복하려는 出家精神은 서릿발처럼 준엄한求道者의 자세로 이어져야 합니다.
'중 벼슬,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답니다. 출가 수행자는 온갖 명예와 지위를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나은 사람들이기 때 문에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이 모여 제대로 수도 정진하는 청정한修道場에서는, 주지 자리가 비어도 서로 가 못하겠다고 뒤꽁무니를 빼는 일이常例입니다. 물론佛•法• 僧 三寶를 보호하고, 가람을 수호해 나가겠다는 간절한 願을 세운 분들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행정직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관광객이 많이 몰려들어 이른바 돈푼깨나 생기는 절의 경 우는, 그 주지직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잡음이 일어나고 있음은 세 상에서도 널리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출가집단이라고 해서 재물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목조건물들을 보수 유지하려면 해매다 적잖은 돈이 들어가아 하고. 대중이 모여 수도 정진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들어야 합니다.
그러너 例의 관광사찰의 경우는 삼보를 보호하고 가람을 수호하는 본래 목적보다는 재물에 얽힌 시비가 끊일 새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돈 많은 절에 들어가 주지를 하겠다고 나서면, 자연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버린 것입니다.
일단 명예와 재물을 버리고 떠나온 사람들이 다시 그 명예와 재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은 한 마디로 해서 出家정신의 不在라고 할 수밖에 없읍니다.
財物갖고 싸우다니
수행자가 세끼 밥 얻어 먹고 옷 입었으면 되고, 용돈 좀 타쓰면 됐지, 그 밖에 재물은 어디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많은 돈이 필요하다면 그의 사생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지요. 禪家에 이런 말이 있읍니다.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부질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짓 이고,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業의 불에 싶을 더 보내는 격이
다. 명예와 재물을 따르는 수도승은 초야에 뭍힌 野人만도 못하다.” 세상에서는 명예와 재물을 많이 차지할수록 부자로 잘 사는 것이 되지만, 출가 수행승들이 모여 사는 出世間에서는 그 명예와 재물이 없을수록 부자가 됩니다. 어디에도 얽힌 데가 없어야 진정 한 자유인(閑道人)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자가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자입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읍니다.
불다 적가모니의 지혜와 자비와 관용을 배우는 출가제자들이 이 따금 돈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까지 하여 세상을 어둡게 만
들다니 末世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읍니까? 같은 制服을 입은 교단의 일원으로서 낲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읍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도 있듯이 한국 불교의 뿌리를 이룬 조계종단은 근래에 이르러 종교적인 기능보다는 逆기능으로써 사회적인 물의와 빈축을 빈번히 사고 있음은 유감스러울 정도를 이제는 훨센 지났읍니다. 차제에 大梧覺醒이 없다면 이 땅의 종교로서 발 ,불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한 경전에서 못된 중들을 두고 이렇게 통탄한 일이 있 읍니다.
“어찌하여 도둑들이 ” 내 옷을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못된 짓을 저지로고 있느냐 ! “
"그小數”에 안도
佛子들은 이 소리를 지나간 부처님의 교훈으로만 접어들게 아니라, 오늘 이 땅의 민중이 큰 소리로 한국 불교계를 항해 꾸짖는 말 씀으로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를 팔아 살아가는 자 를 경전에서는 '가사입은 도둑'이라고 하지 않았읍니까. 출가 수도 승을 가리킨 比丘란 말에는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초기 경전에서 말합니다. 1)사유재산을 모아두지 않고 걸식으로 살아간다. 2) 번뇌와 망상을 깨뜨린다. 3)탐욕과 분노와 무지로 불타고 있는 번뇌의 집에서 뛰쳐나온다. 4)부처님의 계율을 성정하게 지킨다. 5)약마들이 무서워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비구승이라면 이 다섯 가지 뜻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 시시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빛을 지니 고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웃을 비출 수 있겠읍니까.
西山大師 休靜은 그의 '선가귀감'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읍니다.
"출가하여 수도승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 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 구해서도 아니다.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 망상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이으려는 것이며, 온갖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 든는 이웃을 건지기 휘해서인 것이다.”
한국 불교의 장래에 대해서 그래도 저는 희망을 걸고 있읍니다.
못된 중들은 지극히 소수이고, 가려진 곳에는 덕과 지혜를 갖춘 좋 은스님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리고禪院과 講院에는 영원한 구도 자로서 오염되지 않은 눈 푸른 젊음들이 꿋꿋하게 정진하고 있읍 니다. 또한 良識이 있는 在家 신자들이 많다는 것도 이 땅의 불교 를 밝게 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거듭 사최드립니다.合掌. (8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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