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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의사(醫師) 7인, 그들은 의사(義士)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의사(醫師) 7인, 그들은 의사(義士)였다 그들이 시대에 굴하지 않은 모습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면허 수료식이 열렸다. 최초의 한국인 의사가 생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때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들은 각각 홍종은, 김필순, 홍석후, 박서양, 김희영, 주현칙, 신창희 총 7명이었다. 그런데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애비슨의 가르침을 받은 7명의 제자들은 일본의 조선침략 과정 속에서 독립 투사로 변신하게 된다. 지금부터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활약상을 공개해보고자 한다. 홍종은_ 의사 면허 1호, 애비슨의 오른팔 1906년 그는 관립의학교를 3회로 졸업하였지만 더 많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서 세..

간호사1호 이정애

간호사1호 이정애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라는 말이 생긴 시기는 1887년 6월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튼에 의하여 국왕 치료 기관인 시병원(施病院)이 설립되면서 부터였다. 그때는 의사의 치료를 보조하고 환자를 돌보는 아녀자라고 해서 간호부라고 불렀었고, 그 후로는 간호원, 최근에는 간호사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최초의 간호사가 누구였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그리 쉽지가 않다. 요즘처럼 자격면허시험 제도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합격 1호를 상으로 삼았겠지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진 병원이다보니 진짜 간호사는 분명 미국인 여자였을 것이고, 한국인 여자는 횐 가운만을 걸쳤을 뿐 미국인 간호사를 도와주는 한낱 보조자에 지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정애(李貞愛)..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도입 10년 만에 27개서 4개 대학만 명맥유지 소속감 결여… 개업 용이한 진료과 선택 등 문제 ‘의사양성학원’전락… “한국 의학교육 10년 퇴보” 의대교수들 “제도 실패 인정하고 인재양성 대책 필요”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 27개 대학 중 23곳이 의대로 복귀했다. 의료인들은 “교육당국이 의전원 실패를 인정하고, 의학 발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달 초 교육부가 동국대 의대 복귀를 승인했다. 이로써 의학전문대학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강원대 제주대 차의대 건국대 등 4곳으로 줄었다. 전국 41개 의대 중 이들 대학을 제외한 37곳이 의대로 복귀한 것이다. 2005년 경희대, 건국대 등 10개 의대가..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변영남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2010.12.27 00:00:00 역사의 아픔은 있지만 조선치과의사회는 한반도에 최초로 생긴 치과의사회임이 확실하다. 일본 치과의사들이 주축이 되긴 했지만 한국인 치과의사도 참여했으리라는 기록과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창립기념일을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치과의사회에 한국인이 배제되었고 참여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창립 당시 조선치과의사회는 법정단체도 아니고 단순히 친목단체였으며 회원 가입도 임의대로였다. 그 전신이 경성치과의사회이고 경성치과의사회가 중심이 돼 전국 ..

[역사로 보는 의학] 이 해 박는집

[역사로 보는 의학] 이 해 박는집 [역사로 보는 의학] 이 해 박는집 VOM 매거진 / SNUH 이야기 2015.04.15. 15:40 고종 황제, 이방인에게 입을 벌리다​1926년 6월 10일, 서울의 종로. 구름처럼 모여든 군중 사이로 순종 황제의 상여가 지나가고 있다.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라 잃은 것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태정태세문단세…’의 마지막 임금(황제)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런데 이 사진을 보노라면 왼쪽 상단에 우스꽝스런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해 박는집’. 간판에는 의치(義齒)까지 그려져 있다. 오늘날의 일반적인 치과병원과는 달리 보철(補綴)만..

[논 단] 土禪 함석태와 澗松 전형필

[논 단] 土禪 함석태와 澗松 전형필 [논 단] 土禪 함석태와 澗松 전형필 권훈 논설위원 기자 등록 2015.01.20 10:04:33 제621호 ‘간송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서울 성북동 어귀에 있는 작은 미술관 전시회를 계기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문화재 사랑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거장들의 걸작을 수집하였다. 전형필이 수집한 소장품의 면면을 보면 김정희, 정선, 심사정, 김홍도 등의 작품으로 모두가 국보급이다. 지금의 간송 미술관을 탄생시킨 그의 애국심은 독립투사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간송 전형필은 문화 독립 운동가라 말할 수 있다. 간송 전형필에 견줄 만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치과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