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複雜單純

카네이션(carnation, Dianthus caryophyllus)

marineset 2023. 5. 29. 01:11
어버이날의 단상(斷想)/ 차남 만세!

불혹에 접어들어 둘째아들을 보았는데 그 아들녀석이 금년에 중학교 3학년생이 되었다.
우리 부부와 친척들, 그리고 우리가정을 아는 지인들의 기억속에 있는 우리집 둘째아들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나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나름대로 힘든 세월을 겪었다.
초등학교 입학무렵,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하여 언어표현능력과 이해력이 뒤 떨어져 당사자에게는 일종의 스트레스로 작용하였던것 같다.
아이들은 통상 입학전부터 한글 받아쓰기와 읽기, 쉬운 산수문제는 깨우치고 1학년이 되는데, 우리집 아들은 그런거 제대로 못하고 그냥 입학을 했으며, 우리부부는 그 아들이 혼자서 학교에 다녀주는것 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1학년의 국어 받아쓰기가 그 옛날과는 너무 틀려서, 단어가 아닌 문장받아쓰기로 변해 있었으니, 그나마 바보는 만들지 않겠다고 죽도록 단어(어휘)공부만 시킨 결과가 시험을 볼때마다 빵점이었다.
그러니 주위의 또래들이 얼마나 놀려댔겠는가? 그러함에도 그 놀림에 대응할 수 있는 표현능력이 떨어져 결국은 주먹으로 표현을 대신하게 되었다.
같은반 아이들이 죄다 우리집 둘째아들의 주먹세례를 받고 코피를 흘리고, 눈덩이 밤텡이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쯤되니, 학부모들의 항의전화 및 항의방문을 거의 매일 겪게되었다. 결국은 담임선생님의 충정어린 근심과 권유에 의하여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인접한 다른 시로 전학을 시켰다.
이 아들의 아버지되는 필자는 어떻게든 전학을 피할려는 마음에 아들녀석이 다니던 학교의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구강검진도 충실하게(병원 문을 닫고) 봉사하였으며, 높은자리에 계시던 선생님과 그 가족을 위한 무료의치사업도 시행하였건만 어쩔수 없이 권고퇴교 당한 셈이다.

그러나 1학년 어린이의 눈에는 그 전의 학교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게 없었을 것이다.
전학한 학교에서도 우리 둘째아들은 용맹을 떨쳤다. 시험지를 받으면 읽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접어두고 아예 답쓰는 곳에 "똥이다" 라고 쬐다 써 버리니 그 선생님의 눈에 우리집 아들과 그 부모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똥"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되겠다. 둘째아들놈은 엄마가 그렇게도 힘들게 교육시킨 " 선생님,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정중한 표현을 한번도 쓰지 않고, "선생님, 똥 싸고 올께요." 를 외치며 초등학교를 마쳤으니 그간 이 아들의 담임을 맡아주신 선생님들, 특히 여선생님들께 아들이 내 뱉은 언어폭력 " 똥 싸고 올께요."에 대하여 심심한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

우리 부부라고 하여 아들녀석의 학업과 인성계발을 위하여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방치하였겠는가?
일일히 열거하면 치사하고 기가 막혀 활자화 하고 싶지는 않다(돈, 시간, 방법, 정성 모두 포함하여...).
학년이 올라가면서도 이 녀석의 학업성취도는 진전이 없었다. 학교만 다녀주고 건강하게만 자라주었으면 하고 바램을 가졌지만 부모의 바램은 시종일관되지 못하고 조금씩 상향조정되는 듯 하다.
다른 애들도 그렇겠지만, 공부와는 별개로 컴퓨터게임에는 기가 막힐정도의 집중력과 즐거움을 보였다. 중간에 차단시키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표정을 보면 고시공부하는 젊은이의 결연한 자세를 보는듯 하였다.
이 아들은 예습이나 복습은 물론, 학교에서 요구하는 과제(숙제)의 개념이 전무하였다. 방학에 실컷 놀고 개학이 가까워 오면 과제물을 준비해야하는데, 이건 순전히 우리 부부의 몫이다.
아들녀석은 잠자고 오십대에 접어든 아버지라는 사람이 인테넷 뒤져가며 아들의 숙제를 대신하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담임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우연히 술 한잔 하는 기회도 생겼다.
이 아들의 아버지되는 사람은 선생님께 무슨 부탁을 하였을까?
공부 못해도 좋으니까, 방과후 수업이나 숙제의 스트레스를 내 아들에게 주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 통상 부모들은 아이들의 선생님들과 면담을 할때, 공부 잘 할 수 있게 특별한 관심과 지도를 바란다고 하는데, 우리집 둘째아들의 아버지는 참으로 상식 밖의 부탁을 하였다.

이러한 우리집 둘째 아들은 오늘날까지 거짓말을 모른다.
큰아들은 어렸을적에 학교에서 적어오는 알림장에 가끔 장난을 쳤다. 학교에 낼돈 300원이라고 적고는 300 앞에 1자 하나 더 그어 1300원을 가지고 간 적도 있다.
그런데 둘째아들은 그런 잔머리를 못 굴려서 그런지, 순수하고 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짓에 관심이 없다. 우리 부부는 후자에 비중을 두고싶어한다. 용돈은 허구한날, 방바닥이나 책상위에 양말과 함께 굴러다닌다. 돼지저금통도 집에 놀러오는 가끔은 불량(?)친구들에 의하여 찟기기도 하지만 진작 본인은 무애위덕하다. 몇년전에는 미국가서 공부하는 형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다니러 왔다. 공항에서 형을 만나 그 손에 뭔가를 꼬옥 쥐여 주었는데, 돼지저금통을 뜯어 그간 모은 돈을 죄다 자기 형에게 용돈으로 상납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였나?
밤 12시가 다 되어 이 위인이 현관에서 리코더를 분 적이 있었다. 청승맞지만 제법 잘 부는거 같아서 다음날 바로 클라
리넷을 사서 가르쳤는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고 내년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있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특기가 되어 버렸다.

금년 어버이날,
아들의 모친되는 사람이 아들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만 사서 달아달라고 그 전날부터 애걸을 하는데 아들이나 모친이나 둘 다 고집이 대단하다. 결국 우리집 차남되는 사람은 그 어머니의 부탁을 외면하고, 어버지가 몰래 꺽어준 꽃 한 송이를 아버지의 각본에 의해 어쩔수 없이, 게면쩍게 엄마에게 드렸다.
우리 부부는 이 아들이 어색해 하는 행동의 내면을 알고있다.
내년 어버이날에는 기필코 카네이션 한송이씩을 둘째아들의 손을 빌려 달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by badoc 2005-5-11



카네이션-어버이날-사모곡-부모은중경


옛날 로마에 소크니스라는 관을 만드는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솜씨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나 늘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아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동업자들은 끝내 그녀를 암살하고 말았다. 이에 아폴로 신은 그의 신단을 항상 아름답게 꾸며 주던 그녀를 불상히 여겨, 그녀를 작고 붉은 꽃으로 변하게 했는데 그 꽃이 바로 ‘카네이션’이라고 한다. 카네이션은 2000여 년 전부터 재배한 기록이 있으며, 장미, 국화, 튤립과 함께 세계 4대 절화(切花)로 취급된다. 카네이션의 꽃말은 자비로움이다. 카네이션의 색깔에 따라 ‘흰색-나의 사랑, 빨간-열렬한 사랑, 분홍색-부부의 애정, 황색-경멸’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색깔의 뜻을 분별하지 않고 은혜와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굳혀져 있다.
카네이션은 에스파냐, 모나코, 온두라스의 국화(國花)이다.


☆ ☆ ☆ ☆ ☆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의 유래를 잠시 살펴 보면, 지금부터 약 100여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느날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다. 소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엄숙히 치르고 그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카네이션 꽃을 심었다. 그리고 항상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소녀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면서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나갔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소녀는 대답하기를 "어머님이 그리워 어머니 산소에 있는 카네이션과 똑같은 꽃을 달고 나왔다."라고 말하였다. 안나는 그후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여 1904년에 시애틀에서 어머니날 행사가 처음 개최되었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어머님이 살아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고,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던 것이다.

그후 미국에서는 1913년 이래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하였고, 점차 전세계적으로 관습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였으며, 그뒤 1972년에 명칭을 어버이날로 바꾸어 국가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은 서양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돈독하였었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에 대한 효성을 모든 행동의 근본으로 삼았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었었다. 부모님은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추우나 더우나 모든 괴로움을 무릅쓰고 우리를 길러 주시고 또 항상 걱정을 하신다. 그러나 자식된 우리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효도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님께 걱정 끼쳐 드리지 않고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조선시대 정철 선생께서 지으신 것으로써 어버이, 즉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애닯다고 후회해야 소용없으니 살아계신 동안에 잘 섬기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버이를 가까이 모시고 있는 우리들은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고 효도하는 데 온갖 정성을 기울려 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http://user.chollian.net/~mypc21/parentsday.htm]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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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母曲












호미도 날이기는 하지만
낫처럼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어라.
아, 임이시여.
어머님처럼 사랑하실 분이 없어라.

배경설화

목주 땅에 한 여인이 있었다. 아버지와 계모를 잘 봉양하여 효녀로 이름이 났으나, 아버지가 계모의 말만 듣고 딸을 심히 구박하였다. 그럴수록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으나 결국 부모로부터 쫓겨나고 말았다. 부모를 하직하고 나선 그녀는 산 속의 석굴에서 사는 한 노파를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노파가 불쌍하게 여겨 함께 있기를 허락하였다.

그 후 그녀는 그 노파를 부모 섬기듯 극진히 모셨다. 노파는 그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며 또한 알뜰하게 살아 큰 재물을 모았다. 부모가 가난하게 산다는 소식을 듣은 그녀는 자기 집에 부모를 모시고 지성으로 봉양하였으나, 그 부모는 끝끝내 즐겨하지 아니하므로 효녀는 이 노래를 지어 한탄하였다고 한다. 이 설화는 고려사에 수록되어 있는데, 지방의 부녀자들이 이 노래를 구전하여 불러 왔다고 전한다. 사모곡은 이 목주가의 후대 행태가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목주가(木州歌)
신라의 가요. 작자·연대 미상. 전하는 바로는 목주(木州 또는 木川:지금의 天安)에 살던 한 처녀가 지은 것이라 한다. 그녀는 아버지와 계모를 정성껏 섬겨 효녀로 이름이 높았으나 끝내 계모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노파를 만나 그의 며느리가 되어 후에 계모를 모셔다 섬겼으나 그래도 그 사랑을 얻지 못하자 한탄한 나머지 이 노래를 지었다 한다. 이 노래를 일부에서는 고려 속악(俗樂)의 하나였던 《사모곡(思母曲)》으로 보기도 한다(李秉岐). 현재 《사모곡》이라는 이름으로 <목천읍지>에 가사가 실려 전한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해서 이 이야기는 '사모곡'의 내용과 비슷해서 '목주가'가 '사모곡'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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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詩 / 신경림






어머니를 기쁘게 하면 내가 기쁘고,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 내가 슬프고,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고,
어머니를 아프게 하면 내가 아프니,
어머니 가슴 깊은곳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건강 하시면 나라가 건강하고
어머니가 병 드시면 나라조차 병드니
어머니가 곧 나라의 뿌리요 기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활기 차시면 세상이 다 활기차고
어머니가 평화로우시면 세상이 다 아름다우니
곧 어머니가 세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가슴 깊은 곳에 내가 있고
나라와 세상의 중심에 어머니가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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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Mother's Day

The earliest Mother's Day celebrations can be traced back to the spring celebrations of ancient Greece in honor of Rhea, the Mother of the Gods. During the 1600's, England celebrated a day called "Mothering Sunday". Celebrated on the 4th Sunday of Lent (the 40 day period leading up to Easter*), "Mothering Sunday" honored the mothers of England.
*(For more information on Lent/Easter check out - Easter on the Net)

During this time many of the England's poor worked as servants for the wealthy. As most jobs were located far from their homes, the servants would live at the houses of their employers. On Mothering Sunday the servants would have the day off and were encouraged to return home and spend the day with their mothers. A special cake, called the mothering cake, was often brought along to provide a festive touch.

As Christianity spread throughout Europe the celebration changed to honor the "Mother Church" - the spiritual power that gave them life and protected them from harm. Over time the church festival blended with the Mothering Sunday celebration . People began honoring their mothers as well as the church.

In the United States Mother's Day was first suggested in 1872 by Julia Ward Howe (who wrote the words to 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 as a day dedicated to peace. Ms. Howe would hold organized Mother's Day meetings in Boston, Mass ever year.

In 1907 Ana Jarvis, from Philadelphia, began a campaign to establish a national Mother's Day. Ms. Jarvis persuaded her mother's church in Grafton, West Virginia to celebrate Mother's Day on the second anniversary of her mother's death, the 2nd Sunday of May. By the next year Mother's Day was also celebrated in Philadelphia.

Ms. Jarvis and her supporters began to write to ministers, businessman, and politicians in their quest to establish a national Mother's Day. It was successful as by 1911 Mother's Day was celebrated in almost every state. President Woodrow Wilson, in 1914, made the official announcement proclaiming Mother's Day as a national holiday that was to be held each year on the 2nd Sunday of May.

While many countries of the world celebrate their own Mother's Day at different times throughout the year, there are some countries such as Denmark, Finland, Italy, Turkey, Australia, and Belgium which also celebrate Mother's Day on the second Sunday of May.

http://www.holidays.net/mother/story.htm[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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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대은(十重大恩)

부처님의 경전 중에 부모님의 크신 은혜와 보모님의 은혜를 갚는 방법을 설한 부모은중경(父毋恩重經)이 있다. 다시 말해서 부모님의 지중한 은혜를 크게 보답하는 경이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부모님의 열가지 큰 은혜를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설하셨다.

1.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배 속에 품어 보호하는 은혜.
여러 겁을 맻어왔던 인연이 중하여서 어머니 태을 빌려 이승에 태어날 때 열달을 하루 같이 곤경을 치르건만 모든 것 다 잊고서 아기만 생각하네.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낳을 때 고통 받는 은혜.
달이차서 아기을 낳을 때 온몸은 뒤틀리고 무섭고 두려움에 혼미한 자리에서 그래도 기운차려 순산을 다짐하며 새 생명 이루시는 거룩한 모습이여.

3.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낳은 다음 모든 근심 잊는 은혜.
또렷한 아기 울음 세상에 울릴적에 죽도록 받은 아픔 말끔히 가셔지고 충실한 아기 모습만 반갑기 그지없어 기쁨을 서로 나눠 즐기는 부모 모습.

4.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여 기르는 은혜.
어머니 크신 은혜 땅에다 견주리까. 아버지 높은 공덕 하늘에 비끼리까. 어머니 젖주시고 아버지 품어주니 그 하늘 그 땅에서 아들 딸 자라나네.

5.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마른 자리에 가려 눕히는 은혜.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서 누이옵고 차가운 바람결 옷깃으로 막으시니 부모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리하랴, 겹겹이 쌓은 은공 자식을 부축하네.

6.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움을 씻어 주는 은혜.
은혜가 깊을 수록 부모는 축이나나 아들 딸 더러운것 모두다 씻어주며 큰 보물 다루듯이 소중히 가꾸시니 꽃 같은 그 얼굴에 주름만 잡혀가네.

7.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먹이는 은혜.
사랑이 깊으시니 단 것을 자식주고 은공이 높으시니 쓴 것을 대신 받네. 어버이 자식 생각 무엇에 비할건가, 단 이슬 넘쳐나는 봄 동산 같으리니.

8.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몹쓸 짓 마다하지 않고 가르치는 은혜.
아들 딸 깨우치려 몹쓸업 짐짓 짓고 아들 딸 괴로움을 부모가 대신히네, 넙ㄹ고도 깊은 마음 가득한 축원으로 바르게 자라가기 주야로 애쓰시네.

9.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멀리 보내고 걱정하는 은혜.
자식이 다 자라서 부모 곁 떠나가면 마음은 한결 같이 자식을 따르면서 밤이면 추울세라, 낮이면 주릴세라, 지극한 자애로움 끝남이 없을 세라.

10.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끝까지 어여삐 여기는 은혜.
늙어서 부모 나이 백살이 되더라도 여든 된 아들 딸을 쉼없이 걱정하니 서거나 앉았거나 마음은 따라가고 멀거나 가깝거나 사랑은 한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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