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스님 / 논설위원ㆍ조계종 포교연구실장
경인년 새해, 소통과 화합이 교계 안팎의 화두로 떠올랐다. 소통(疏通)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의 뜻이다. 소통과 함께 항상 따라붙는 말이 화합(和合)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한 시공간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조건에서, 서로 통하지 않고 섞이지 않고 어울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소통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평화와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 전제이고 조건이 된다.
자기의 부족함부터 인정하라
우리 사찰은 사부대중이 함께 사회복지시설도 운영하고, ‘행복한이주민센터’라는 비영리 단체도 운영하고 있는데, 올 들어 행복한 이주민센터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되면서 국가위탁운영체가 되는 성과를 거뒀다. 사부대중이 합심해 진실되게 일하고 노력한 결과이기에 모두가 무척 기뻐했다. 그런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되니, 전문인력을 공개모집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기존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이 정서가 안 맞는다, 불교적 소양이 없고 이기적이라고 말하며 불편해했다. 새로운 사람들은 기존 사람들이 실력이 없고, 능력이 없고, 주먹구구로 일한다며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서로를 비난하고 견제하면서, 결과를 기뻐하던 일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뒷전이 되었다. 소통이 안돼 한 시간이면 끝날 회의가 서너 시간 걸리고, 일은 진척이 없다. 당분간 이 소란을 잠재우고 조율해가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까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다.
어느 조직, 어느 모임을 보아도 완벽한 사람들만이 모여들지 않는다. 모인 사람들 모두 2%씩 부족한 데가 있다. 일을 잘하는데 성실하지 않거나, 실력은 있는데 겸손하지 않거나, 겸손하고 사람 좋은데 일은 못하거나, 일도 잘하고 사람도 괜찮은데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저렇게 2% 부족한 사람들이 결국 함께 모여 하나의 조직을 이루고 사회구성원이 된다.
수소 하나와 산소 두 개가 모여야 물(H2O)이 되는 것처럼 이 연기(緣起)의 세상에서 결합은 필연이다. 이 필연 속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의 2%를 채워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부족함 속에서 부족한 것들을 인정하고, 차근차근 소통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갈등과 다툼 속에서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내 나름의 방법을 제시해 본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의 부족한 면을 용기 있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부족한 면이 많다.’ △그 다음 감정이입이라는 세련된 마음 작용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내 감정은 중요하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나는 비난받거나 따돌림이나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과 나를 같은 선상에 놓은 다음, 차츰 마음을 섞고, 함께 잘 지내는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차나 한잔 할까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발표 잘 들었어요.” “정말 잘하시네요. 나도 배우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이 우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자신을 존중해주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호감을 받고 싶으면 호감을 먼저 보여주면 된다. 서로서로가 열리고 소통해야 비로소 일이 잘 진행된다. 그래서 일보다는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화합이 먼저다.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모두 한 집을 이루고 있네(明月淸風共一家).
[불교신문 2590호/ 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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