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스님 / 의미 없는 생명은 없다
데스크승인 [152호] 2010.08.18 09:02:00
정호스님 / 논설위원ㆍ조계종 포교연구실장
“하늘은 뜻 없는 목숨을 낳지 않고, 땅은 의미 없는 생명을 기르지 않는다.”
성인의 이 가르침이 다시 한번 사무치게 다가온 것은 ‘태호 이야기’를 본 후이다. 양팔과 허벅지가 없이 태어났고 ‘피에르 로빈 증후군’이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희귀병까지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 버려진 후 승가원에서 생활하는 유태호 군. 8개의 발가락으로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벗고 입고, 로션을 바르며 몸을 단장하고, 글씨를 쓰고, 뇌병변 장애를 가진 승가원 동생에게 글씨를 가르치는 놀랄 만큼 밝고 순수한 아이였다.
잘나고 못난 것 가치기준 안 돼
장애를 갖고 태어나 부모에게도 버려진 이 아이가 어떻게 이리도 밝고 훌륭한 심성을 가진 아이로 생존한 것일까! ‘누군가는 어떤 마음으로 버리고 누군가는 어떤 마음으로 살린 것일까.’ ‘사지 멀쩡하고 정상적인 지능을 갖고, 아무 불편함 없이 자립 활동을 하는 우리들은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사람들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아이였다.
버린 쪽은 아이가 온전치 못하니 쓸모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 아이를 거둬 살린 쪽은 온전치도 못하지만 숨 쉬는 생명이기에,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생명이기에 거둔 것이리라. 버리고 거두고, 죽이고 살리는 일이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가치가 있고 없고의 기준이 그 생명이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간택하고 분별하고 꺼리는 자들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효용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태호는 가치가 없는 생명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해도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는 생산적인 경제활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정신을 일깨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 에너지도 먹고 살아야 한다. 태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생명의 가치,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자신의 존재방식을 돌아볼 기회라는 엄청난 가치기회를 주었다.
복지관 주변에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열등하고 부족한’ 많은 생명들이 산다. 학교 부적응으로 퇴학위기의 아이들도 있고, 치매에 걸려 스스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는 치매 어르신들도 있고, 신체와 지체장애인도 있고, 엄마가 외국인이라 언어능력이 떨어져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있다. 부족하기에, 병들었기에, 소수이기에 고통 받는 많은 생명들이 있다. 이 생명들을 생존하게 하고 보호하고 교육하려면 정말 수많은 인력들과 수많은 비용이 든다.
평화는 소수자 존중에서 비롯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 비용과 부담들을 함께 나누고, 함께 책임지고,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길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 그들이 존중받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나도 행복하다. 우리 삶의 평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세상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부터, 타인에게 베푸는 인정과 관용으로부터 온다. 그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경이로움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한 불국토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불교신문 2649호/ 8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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