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성의 거래:성욕과 권력의 역사 (1)

marineset 2023. 5. 31. 03:18

심리학박사


2013년 10월 22일(화) 00:00


1907년에 발표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에는 다섯 명의 여성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 인근의 사창가 여성을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그림 속 우측의 두 여성은 괴상한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이 변형되어 있다. 몸을 통한 쾌락의 욕구와 성병에 대한 두려움을 작가가 양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렇듯 성매매는 남성의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역사이자, 몸을 파는 여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욕망의 사회 구조 안에서 국가와 권력이 어떻게 성을 거래해 왔는지 그 역사를 조망해보자.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이야기꾼이었던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기원전 18세기경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모든 여성이 일생에 한 번, 미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 신전에서 몸을 바쳐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 주어진 신전 봉사의 의무였는데, 여성이 신에게 몸을 바침으로써 신성한 잉태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당시에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제가 여성의 신전 봉사 의무의 수혜자였다. 그러나 제한된 수의 사제에 비해 여성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신성한 성교를 수행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신전 숭배자들이나 여행자들이 맡게 된다. 이들이 맘에 드는 여성에게 은전을 던지면 여성은 그 남성에게 성적 환대를 베풀어야 했다. 이렇게 신을 대신하는 사람에게 몸을 바쳐 신전 봉사 의무로부터 해방되면 여성은 남성에게 받은 돈을 신의 제단에 바쳤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들은 남성에게 쉽게 선택을 받아 신전 봉사 의무에서 벗어났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자유를 얻을 때까지 많은 기간을 신전에서 지내야만 했다. 그래서 신전에서는 그러한 여성들의 신전 봉사 의무를 대신하면서 남성에게 쉽게 선택되어 신전의 수입을 늘릴 수 있는 여성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성매매의 최초 기록인 신전 매춘부이다.

신전 매춘부들은 자신의 업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는데 성행위를 하는 동안 여성은 여신의 위치로, 돈을 내는 남성 역시 신의 위치로 승격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전 매춘의 풍습은 바빌로니아 이외에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인도, 일본 등 고대 사회에 만연하였는데,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은 자신의 딸을 신전 매춘부로 바쳐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이집트의 폭군 쿠프왕은 자신의 딸들에게 신전 매춘을 강요해 피라미드 건축비를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여성에게 주어진 신전 봉사의 의무는 표면적으로 여신을 향한 신앙심의 증명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남성보다 지위가 낮았던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화하려는 지배자들의 권력으로부터 성매매가 발달한 것을 엿볼 수 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종교적 매춘 관습은 점차 사라져가고, 도시나 항구를 중심으로 권력을 가진 남성의 성욕과 생활고를 겪는 여성의 몸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즉 상업적 성매매가 발달한 것이다.

상업적 성매매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창(公娼)제도를 탄생시킨다. 이는 그리스의 아테네 시인이자 정치가인 솔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기원전 6세기경 히티어리즘, 즉 국가에서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축첩(蓄妾)제도를 입법화하였다. 아테네 시내 아레오파거스 궁전에 여성들을 모여 살게 하면서 돈을 받고 남성의 첩이 되거나 몸을 팔도록 한 것이다. 축첩제도가 도입되자 당시 아테네 남성은 “도시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공창제도를 설치한 솔론이여! 그대의 현명한 정책이 아니었다면 시내를 활보하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좋은 집안의 처녀들을 유혹해서 못된 짓을 저질렀을 것입니다.”하며 솔론을 칭송했다고 한다.

이러한 칭송 속에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그 하나는 남성의 성욕은 너무 강해서 일부일처제 결혼에 만족할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매매 제도를 통해 남성의 성욕을 해결하지 못하면 강간과 같은 성폭력이 만연하여 국가의 안녕과 평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을 파는 여성을 사회 구조적인 권력의 희생자로 보기보다는 타락한 여성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성매매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이다. 성의 거래를 바라보는 이러한 잘못된 믿음들이 상업적 성매매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되며, 결국 성매매는 사회악이지만 필요악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로마의 고대 도시 폼페이에서는 목욕탕에서 성매매가 유행하였는데,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영향으로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도 성매매가 성행하였다. 중세 유럽지역에서는 엄격한 일부일처제 유지를 위해 축첩제도를 없애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프랑스의 아비뇽에서는 고대의 신전에서처럼 교회 내 매음굴이 존재하였다. 심지어 16세기경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회 재정을 위해 로마에 매음굴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욕망과 권력의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 교환관계라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채 빠져나오기 힘든 어둠의 터널과 거래를 하게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