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진료실斷想 21

“우리가 동네북이냐” 치의 슬픈 자화상

“우리가 동네북이냐” 치의 슬픈 자화상 진료실에서 by badoc 2019/07/10 13:39 badoc.egloos.com/5355681 덧글수 : 0 환자에 얻어맞고 탈세한다 의심받고 언론선 일부 일탈행위로 전체 매도 각종 의료 규제에 “숨통이 막힌다” 김용재·전수환·한동현 기자 등록 2019.07.09 18:12:36 치과의사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다.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광주 여자 치과의사 피습에 이어 최근 대전에서 치과의사가 골프채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치과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의료인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관련 법 조항도 일부 환자들의 폭주를 막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인다는 불안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과계를 돈..

대한민국 최초의 의사(醫師) 7인, 그들은 의사(義士)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의사(醫師) 7인, 그들은 의사(義士)였다 그들이 시대에 굴하지 않은 모습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 면허 수료식이 열렸다. 최초의 한국인 의사가 생기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때 의사 면허를 받은 사람들은 각각 홍종은, 김필순, 홍석후, 박서양, 김희영, 주현칙, 신창희 총 7명이었다. 그런데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애비슨의 가르침을 받은 7명의 제자들은 일본의 조선침략 과정 속에서 독립 투사로 변신하게 된다. 지금부터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활약상을 공개해보고자 한다. 홍종은_ 의사 면허 1호, 애비슨의 오른팔 1906년 그는 관립의학교를 3회로 졸업하였지만 더 많은 실력을 갈고 닦기 위해서 세..

간호사1호 이정애

간호사1호 이정애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라는 말이 생긴 시기는 1887년 6월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튼에 의하여 국왕 치료 기관인 시병원(施病院)이 설립되면서 부터였다. 그때는 의사의 치료를 보조하고 환자를 돌보는 아녀자라고 해서 간호부라고 불렀었고, 그 후로는 간호원, 최근에는 간호사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최초의 간호사가 누구였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그리 쉽지가 않다. 요즘처럼 자격면허시험 제도가 처음부터 있었다면 합격 1호를 상으로 삼았겠지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진 병원이다보니 진짜 간호사는 분명 미국인 여자였을 것이고, 한국인 여자는 횐 가운만을 걸쳤을 뿐 미국인 간호사를 도와주는 한낱 보조자에 지나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정애(李貞愛)..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의학전문대학원이 ‘미운오리새끼’가 된 까닭은? 도입 10년 만에 27개서 4개 대학만 명맥유지 소속감 결여… 개업 용이한 진료과 선택 등 문제 ‘의사양성학원’전락… “한국 의학교육 10년 퇴보” 의대교수들 “제도 실패 인정하고 인재양성 대책 필요”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 27개 대학 중 23곳이 의대로 복귀했다. 의료인들은 “교육당국이 의전원 실패를 인정하고, 의학 발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달 초 교육부가 동국대 의대 복귀를 승인했다. 이로써 의학전문대학원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강원대 제주대 차의대 건국대 등 4곳으로 줄었다. 전국 41개 의대 중 이들 대학을 제외한 37곳이 의대로 복귀한 것이다. 2005년 경희대, 건국대 등 10개 의대가..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변영남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 한국인 치과의사의 조선치과의사회 참여 개연성과 그 역사적 의미 2010.12.27 00:00:00 역사의 아픔은 있지만 조선치과의사회는 한반도에 최초로 생긴 치과의사회임이 확실하다. 일본 치과의사들이 주축이 되긴 했지만 한국인 치과의사도 참여했으리라는 기록과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창립기념일을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조선치과의사회에 한국인이 배제되었고 참여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창립 당시 조선치과의사회는 법정단체도 아니고 단순히 친목단체였으며 회원 가입도 임의대로였다. 그 전신이 경성치과의사회이고 경성치과의사회가 중심이 돼 전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