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679

[대한민국 제1호 大使 張勉]

[대한민국 제1호 大使 張勉] 입력 : 2010.03.26 02:54 張勉 초대 주미대사 붓글씨로 신임장 작성 '신임장 장면, 임 특명전권 대사, 보 북미합중국 주재 특명전권 대사.' 대한민국 제1호 대사(大使)의 신임장(letter of credence)은 현대 외교문서와는 모양과 형식이 크게 달랐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9년에 장면(張勉·가운데 사진) 박사를 주미 대사로 인정해 달라며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신임장은 타자기도 아닌 붓글씨로 작성됐고, 세로로 쓰여 있었다. 이 대통령과 당시 임병직 외교부 장관의 붉은 도장도 찍혀 있었다. 장면 박사를 대한민국 1호 대사로 미국에 보낸 이 순간은 대한민국 62년 외교사의 중요 장면 중 하나였다.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대..

이승만-장개석 진해회담(1949.8.7)

이승만-장개석 진해회담(1949.8.7) “이승만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장개석 자유중국총통은 진해에서 이대통령과 회동하고, 아시아에 있어 공산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양국의 공통된 입장을 확인하며 결속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회담을 바탕으로 하여 54년에는 아시아반공연맹의 창설을 보았고 다시 66년에는 세계반공연맹으로 확대, 범세계적인 반공전선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동아의 지면반세기, 동아일보사, 1970) 동아일보 1949년 8월 9일자 1면, 공통된 위협에 대항, 태맹예비회의(太盟豫備會議) 퀴씨에 요청, 극동의 방공태세거익공고(防共態勢去益鞏固), 역사적 진해회담의 성과 【진해에서 신창호 본사특파원특전】세기의 각광을 받으며 태동하는 태평양동맹은 6일부터 한국진해에서의 이-장(李-蔣..

總理 잔혹사

總理 잔혹사 b 역대 40명 총리 중 14명 檢 수사, 7명 기소 - 한명숙 전 총리 첫 실형 '불명예'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ㆍ한 사람의 아래, 만 사람의 위). ” ‘국정 2인자’ 국무총리를 상징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총리는 대통령에 이어 국정 2인자로 분류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통했던 조선 초기의 영의정과 비견되는 이유다. 하지만 역대 총리 중 일부를 제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수행한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장준현 부장판사)는 29일 “성완종의 인터뷰 녹음파일의 진실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비서진의 진술 신빙성을 모두 인정할 수 있다”며 이 전 총리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한민..

[희귀자료]1954년 해군 어린이합창단 미국공연

[희귀자료]1954년 해군 어린이합창단 미국공연 Korean Children's Choir at U.N. Headquarters The Korean Children's Choir which is in the U.S. on a concert tour as part of a $10,000,000 fund drive for the rehabilitation of Korea, today visited United Nations Headquarters. The choral group is composed of twenty-two girls and three boys, ranging in age from 7 to 13 years. The group visited Headquarters as guests of the..

[취재記] 이승복과 평창동계평화올림픽

[취재記] 이승복과 평창동계평화올림픽 "소년 영웅 이승복의 저항 · 항거의 안보정신이 평창동계평화올림픽으로 승화, 세계적 평화의 기념관으로 우뚝 서지기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5-12-15 오후 4:16:11 눈(雪)의 고장이자 2018년 세계 동계올림픽 개최현장인 강원도 평창을 찾았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우리나라 스키의 메카로 유명했던 용평면,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어릴 적 노래가사로 평창-용평을 먼저 배운 속사리 계방산 자락 운두령이다. 2011년 12월9일 이후 2015년 12월9일이었으니 정확히 3년만인 것 같다. 아마 2006년 겨울로 기억된 첫 만남으로부터 회사의 속사정으로 만나지 못하다 찾게 되었으니 그래도 적지 않은 만남인 것 같다. 12월9일은 4~50대 ..

북한 도발 일지

[북한 도발 일지] 58. 2. 15 KNA 납북사건: 부산 수영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KNA(창랑호)가 평택 상공에서 무장 북한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돼 평양순안 공항에 강제 착륙했다. 우리국회는 북한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6.25참전 16개국에 보내는 등 강력 항의하자 탑승자 26명 전원을 돌려보냈다. 67, 1, 19 당포함 침몰사건: 동해 북쪽 해상에서 해군함대 제1전단 소속 당포함이 북한군의 해안포를 맞고 격침된 사건이다. 당포함은 당시 북방한계선 근방에서 명태 잡이를 하던 우리 어선을 보호해 남하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68, 1. 21 청와대 습격 기도사건:북한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124군부대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 31명을 남파하였으나 대부분 섬멸(사살 2 명)되고, 김신조..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아시나요?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아시나요? KNA 사장 신용욱. 친일과 신념의 두 얼굴 꼬르마딜리오 2015.09.01 11:11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백여 년에 불과하다. 항공의 역사는 그처럼 단출하지만 발전 속도만큼은 마하 급이어서 기체는 초기의 복엽기, 단엽기 수준을 세차게 뛰어넘어 음속의 몇 배를 넘나들게 되었고, 상업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항공 산업 없이는 지구촌이란 단어를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항공시대 초창기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였다.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 한국인들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자국의 선진 기계문명을 과시하는 일본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개 넘치던 이 땅의 젊은이들..

탈북자 2만7000명 시대

탈북자 2만7000명 시대 판문점서 귀순한 이수근, 위장간첩 죄명으로 사형 탈북자2015. 05. 08 15:49 입력 | 2015. 05. 10 11:21 수정 北 노금석 중위 휴전 2개월 만에 MIG-15 전투기 타고 내려와 1987년 청진의과대학 의사 김만철 일가 11명 기획탈북 후 귀순 ■탈북자 2만7000명 시대 통일부의 ‘2015 통일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탈북 후 국내로 입국한 북한주민(이하 탈북자)은 총 2만7518명이다. 그 숫자만큼이나 이제 우리 주위에서 탈북자들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탈북자는 남자 8251명, 여자 1만9267명으로 여자가 두 배 이상 많았다. 연도별로는 2000년 이전까지는 누적 입국자가 1000명도 안 됐지만, 이후 급증..

인민군 엘리트 신중철의 귀순

인민군 엘리트 신중철의 귀순 [출처] 인민군 엘리트 신중철의 귀순|작성자 지식스닷컴 어느 해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1983년은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한 해였다.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넘어오면서 휴전 후 최초로 공습경보가 울렸고, 중국 민항기가 피랍되어 북한 영공을 통과해 남한의 춘천에 불시착했다. 이를 통해 남한은 왕년의 철천지 원수 중공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부르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의 호칭을 받는 첫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10월에는 전두환 (나는 이 자에게만큼은 대통령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을 노린 북한의 아웅산 테러가 있었다. 그 가운데 5월 7일 뜻밖의 인물이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인민군 13사단 민경대대 참모장 신중철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김일성 군사대학 졸..

부동의 적장자, 세자가 되다

부동의 적장자, 세자가 되다 부동의 적장자, 세자가 되다 태조 3년(1394) 태조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의 집에 그토록 기다리던 맏아들이 태어났으니 바로 양녕대군으로 이름을 ‘제’라 지었다. 이때가 이방원의 나이 스물여덟, 부인 민씨의 나이 서른 살이었다. 이방원 부부 사이에 이미 딸이 둘 있었다고는 하나 당시로서는 대단히 늦은 나이에 보게 된 자식이었다. 아들 셋을 연거푸 잃고서 얻은 사내아이였던지라 양녕대군을 자신의 살림집에서 기르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바로 민씨 부인의 친정집으로 보냈다. 양녕대군의 외할머니를 비롯한 민씨의 친정집에서는 행여 탈이라도 날 새라 지극정성으로 양녕대군을 돌보았고 그 덕에 외할머니와 외숙모들의 품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특히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 이후부터는 이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