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역사속으로 143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2/27/07554006-e640-4023-94d3-f7561bd8bca2.jpg");'> 채인택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ciimccp@joongang.co.kr + 구독신청 베트남 못 건드리는 중국, 김정은 통과 중월국경에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9.02.27 06:00 수정 2019.02.27 15:23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26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통과한 중국·베트남 사이 국경지대는 딱 40년 전 중국이 베트남을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 땅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침공한 19..

국공내전(國共內戰)

국공내전(國共內戰) 1. 국공내전의 배경과 원인1) 일본의 패전1945년 8월 일본군이 항복하면서 8년간에 걸친 전쟁에서 중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오랜 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제2차 국공합작을 거쳐 국민당 정부군과 공산군이 함께 항일전에 참여해 왔기 때문에, 공동의 적이었던 일본의 항복은 곧 두 세력 간의 숙명적인 무력대결을 예상케하였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이 항복하기 전부터 양자 간의 긴장관계가 팽팽했던 데다가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이 컸기 때문이었다. 전쟁 종식 이전부터 전후구상에 대한 국·공 양측의 입장 차이가매우 컸으며, 패전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해방구를 접수하는 문제에서부터 양측의 무..

황포군관학교 조선혁명가들

황포군관학교 조선혁명가들 불멸의 발자취 시리즈 불멸의 발자취(9)--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1-08-10 13:55:58 ] 클릭: [ ]광주시 황포구 장주도에 위치한 황포군관학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있다. 사람들은 복원된 교실, 기숙사, 사무실, 식당들을 돌아보면서 감회를 금치 못하였다. 바로 이처럼 간소한 학교에서 20여년간 중국혁명을 주름잡았던 수많은 장성급 인물들이 배출되여 나왔던것이다.앞줄 건물 2층에는 총리사무실과 교장실, 비서실이 있었고 부근에는 학교 각 부서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벽에는 황포군관학교 1기생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편액이 걸려있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조선혁명가들은 황포군관학교 제3기부터 입교하기 시..

만주군관학교(満州国陸軍軍官学校) 졸업생

만주군관학교(満州国陸軍軍官学校) 졸업생 [봉천군관학교]•4기 – 5명◦김응조: 만주군사병 출신. 훗날 대한민국 국군 육군 준장을 지냈다.◦계인주: 만주군사병 출신. 헌병병과. HID 대장으로 켈로(KLO) 부대 통솔◦강재호: 간도특설대◦박봉조: 간도특설대◦이원형: 간도특설대•5기 – 18명 합격(1명 퇴교, 1명 소속변경). 응모 자격에 조선계 명시. 간도특설대 창설 멤버.◦정일권: 일본육사 55기 편입. 한국군 육군 대장, 국무총리.◦김일환: 한국군 육군 중장, 교통부장관.◦김백일: 간도특설대. 본명 김찬규. 한국군 육군 중장.◦김석범: 간도특설대. 일본육사 54기 편입. 한국군 해병 중장.[5]◦송석하: 간도특설대. 수석졸업. 한국군 육군 소장.◦신현준: 간도특설대. 본명 신봉균. 한국군 해병 중장...

친일과 비리의 주홍글씨

친일과 비리의 주홍글씨 [이슈 논쟁] 비리·친일 등 과오만 보지말고 공적 포함한 균형적 평가 이뤄져야 입력 2011.08.16. 21:07 수정 2011.08.17. 00:57 댓글 0개 ●찬성'英 장교 출신' 조지 워싱턴, 친영파 비난 못해이분법적 사고가 낳는 '인격 테러' 지양해야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국가원수와 국가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공자,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들이 묻혀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대전 현충원 안장에 대해 5·18유관단체들은 그가 5공비리 인사였다는 점을 거론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의 경우 사망 후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는데 대해선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친일파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안현태는 이미 복권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