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同床異夢 118

[法頂] 있는 그대로가 좋다

[法頂] 있는 그대로가 좋다 온 천지가 꽃이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철 따라 꽃이 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제 철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삭막하겠는가. 이 어디서 온 눈부신 꽃들인가. 꽃은 하루 아침에 우연히 피지 않는다. 여름철의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그리고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입만 열면 경제와 돈타령만 늘어놓느라고 자신이 지닌 아름다운 속뜰을 열 줄을 모른다. 경제에만 정신을 빼앗겨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성이 소멸..

[法頂]무소유

[法頂]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 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

[法頂특별기고 ]채우는 일과 비우는 일

[法頂특별기고 ]채우는 일과 비우는 일 “소음 중독社會" 며칠 전 光州에 있는 한 산업체에서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강연을 하고 5시 10분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고단하던 참이 라 참을 좀 잤으면 싶었는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놈의 운동경기 중계 때문에 참을 청할 수가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서 우리들 의 귀는 쉴 여가도 없이 줄곧 혹사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기 싫은 것은 눈 감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열려 있는 귀는 그럴 수 없으니 번번이 곤욕을 치르게 된다. 듣지 않을 수 있는 거부의 자 유가 오늘 우리에게는 없다. 참을 잘 수 없을 바에야 눈을 뜨고 평화로운 황혼의 들녘에 마음을 내맡기는 것이 차라리 편하다. 산 그늘이 내릴 무렵 들녘은 한결 정답고 풍성하게 보인다. 창 밖으로 스치고 ..

[法頂특별기고 ]袈裟가 부끄럽구나

[法頂특별기고 ]袈裟가 부끄럽구나 어디든 문제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한 절의 住持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폭력과 살인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승단에 몸을 담은 한 사람으로서도 낯을 들 수가 없읍니다. 승단의 인사문제로 인해 온갖 추대를 보인 일 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이번 처럼 살인으로까지 몰고 간 적은 일 서기 없었던 일입니다. 새삼스레 制服의 悲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읍니다. 물론 어떤 집단에서든지 불미스런 물의를 일으킨 것은 극히 소수의 무리들이지 만,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막중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에서는 잘한 일은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잘못된 일은 그 실체보다 몇 갑절 크게 울려 퍼지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

[法頂특별기고]우리 風物없는 "거리 秩序"

[法頂특별기고]우리 風物없는 "거리 秩序" '장'은 情의 마당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난 일마 후, 시골에서 닷새마다 한 번찍 서는 장을 없애겠다는 말이 당국에 의해 거론된 적이 있었다 . 그 이유인즉 시골의 징이 비능률적이고 낭비가 심하다고 해서였다 그 때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었다. 없앨 것을 없애 지, 시골 사람들의 '만남의 자리'까지 없애겠다니 될 말인가. 장날 이면 소용되는 물건만 사고 파는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친지들으 만나 막혔던 회포를 풀기도 하고, 새로운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세 상 돌아가는 일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리고 농사일과 아들 딸 의 혼사까지도 그 장날에 익히는 수가 더러 있다. 그러나 장은 단순한 상품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훈훈한人情의 마당이 되기도 한다...

[정동칼럼]이름값 못하는 정부기관들

[정동칼럼]이름값 못하는 정부기관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숙하고 있는 지킴이 대학생들에게 방한 텐트를 지급해달라는 서울변협의 긴급구제 신청을 국가인권위원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의 중대한 침해가 없으며 농성자들의 생명권이 위협받을 정도로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겨울에 60여일째 노숙하면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여기에서 인권위의 결정이 정당한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권위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으면 하는 생각에 아쉬움을 감추기는 어렵다. 인권위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이다. 인권위는 이런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입법, 사법, 행정 3부 ..